첫사랑이라고 어찌 아름답기만 할까.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허공을 걷는 듯했던 설렘과 떨림, 달뜬 감흥은 미소를 짓게 하지만, 유치하기 짝이 없고, 서툴렀던 말들이며 행동은 쓴웃음을 머금게 한다. 가슴 언저리에 상처로 남았다면 더더욱. 이용주 감독은 “내 20대의 반성문 같은 영화”라고 설명했다. 가슴에 상흔이 있는 후자라는 얘기다.
건축가 승민은 15년 만에 만난 첫사랑을 알아보지 못한다. “누구신지….” 불쑥 찾아온 서연은 그에게 제주도 고향집을 새로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예전에 약속했잖아. 네가 내 집 지어주기로.” '건축학개론'은 그렇게 집을 짓는 영화다.
집은 땅위에 짓지만, 추억은 마음에 집을 짓는다. 두 사람 사이엔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청춘의 한 때가 차곡차곡 복원된다. 승민은 첫눈에 서연에게 반한다. 집 방향이 같아 버스에서 자주 만나면서 사랑의 감정은 점점 커져간다. 보편적 사랑을 바탕에 깔고 설렘, 떨림, 풋풋함, 기다림의 감정들을 자재 삼아 지어 올린 첫사랑의 장면들은 꽤 튼실하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감정표현이 서툴러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괴로워하고, 작은 오해로 멀어져야만 했던 진통의 순간들은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스러진 사랑에 오열하는 이제훈과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로 스크린을 밝히는 수지는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관객들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건축학개론'은 사실 이용주 감독의 10년 프로젝트다. 그의 첫 작품이 되었을 영화다. 여러 번 엎어지면서, 증축, 개조, 보수를 거듭해왔다. 감성의 결이 생생히 살아 관객의 가슴을 적시는 것은 그의 10년 노력의 성과일 것이다.
현재의 승민과 서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쩌지 못하는 그 감정과 엇갈림, 세상살이의 신산함을 확인하면서, 가슴 속 단단한 응어리를 허문다. 영화는 그렇게 옛 사랑의 기억에 아파하고, 스스로를 나무라며 살아온 사람들을 위로한다. 따뜻하고 오래 여운이 남는다. 명품 멜로의 부활이다. '기억은 저마다 한 채씩의 집을 짓는다'는 고 최명희 소설가의 글처럼 추억의 집을 한 채 지어야 할 것만 같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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