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명렬 대전남부교회 담임목사 |
그러나 그 당시 내 머리 속에는 그 고통보다도 나를 더 사로잡는 생각이 있었다. 치료비 문제였다. 당시에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지 않았던 때였고, 아버님이 공직에 계시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의료보험의 혜택이 중지된 상황이었다. 어린 마음에 치료비가 걱정이 되었다. 팔이 부러지고, 병원으로 황급히 옮기는 상황에서 친구들은 걱정하는 나를 위해 일을 꾸몄다. 팔이 부러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의료보험을 받을 수 있는 친구인 것으로! 친구의 집 주소와 아버님의 존함, 전화번호를 외우고, 간호사의 질문에 답을 했다. 신분을 철저하게 세탁했다. 그러나 나의 양심을 짓누른 사건이 곧 벌어졌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병원으로 달려오셨다. 선생님은 이름이 바뀐 제자들 앞에서, 상황을 짐작하시고, 침묵으로 제자들의 잘못을 묵인하셨다. 선생님이 가시고 나서, 나는 자수의 길을 선택했다. 수간호사로 보이는 선생님의 호통이 있었다. '너희들이 한 일을 얼마나 큰 일인 줄 아느냐! 법에 저촉이 되는 엄청난 일이라고…' 비싼 치료비를 내야 했고, 시선은 싸늘하게 느껴졌다. 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야 했고, 한 달을 다녀야 했다.
그런 내가 불쌍히 보였는지, 한 간호사 누나가 하루치 약을 더 주면서 “나흘에 한 번 와도 돼”라며, 따뜻한 미소를 보내 주었다. 그것은 죄인인 나에 대한 용서요, 용납이요, 사랑이었다. 당시에는 쑥스럽고 창피해서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고,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못했지만, 그 배려는 나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이 바뀌었다. 1년 전 아버지를 잃고, 세상에 대해서 이유 없는 적대심으로 가득했던 사춘기의 한 소년이 세상을 따뜻하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살아오면서 그 고마움은 잊혀지지 않았다. 또한 나는 살면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진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이다. 어느 노인이 한 공원에서 말없이 깨진 유리조각을 줍고 있었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 것을 염려해서였다. 그는 공원의 청소부가 아닌 교육자 페스탈로치(Pestalozzi, 1746~1827)였다. 나는 그의 교육철학과 이론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진정한 교육자라는 사실은 기꺼이 인정한다. 오늘 내가 하는 일에서 작은 친절과 배려를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어보자! 그것이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선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국민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후보자들과 우리 모두가 이것만은 꼭 기억했으면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화려한 공약과 구호가 아니라, 공원의 유리조각을 줍는 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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