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영 작가ㆍ대전중구문학회 사무국장 |
우리말의 '봄'은 의미상 다른 뜻이 있다. 봄은 따뜻한 온기가 다가옴을 뜻하는 불(火)+올(來)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약동하는 자연 현상을 단순히 '본다' (견(見))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아 초목에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움트는 그 경이로움을 인간의 눈으로 직접 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약동하는 '새 봄'이라고 한다. 새 여름, 새 가을, 새 겨울이라 하지 않고 오직 봄만을 새 봄(新春)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불교의 사천대왕(四天大王)에서 봄은 지국천왕(持國天王)이라고 한다. 수미산(須彌山)동방에서 수호하는 신(神)으로서 만물이 소생하고 동쪽에서 해가 뜨듯 인생과 만물의 시작을 뜻한다. 새봄에 화를 내면 간이 썩는다고 한다. 일상에서 치미는 화는 잠시 접고 화기애애하게 허허로이 웃을 지어다.
또 한참 노동을 하는 여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옛 문헌에는 여름(實)과 녀름(夏)을 따로 구분해 기록하고 있으나 이 말은 한 뿌리에서 나온 말로써 의미 분화를 일으킨 결과다. 실하(實夏)는 열매가 열리는 것에 대한 보람(結實)과 대자연의 순리에 따른, 그 결실의 내면을 열어 보이는(開)일이다. 몸을 연다는 것, 즉 옷을 벗고 나를 드러내 보이며 창이나 방문을 활짝 열어 보이는 시기다.
여름철 더워 옷을 벗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오곡백과가 강렬한 햇볕을 받아 가장 왕성한 생명력을 구가하는 여름 한 철, 사람으로 비긴다면 혈기방장한 20~30대의 청년기이다. 그래서 여름을 광목천왕(廣目天王)이라고 하여 푸른 신록만큼이나 넉넉하게 익는 열매를 향해 넓고 깊게 바라보고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가을은 소슬한 바람결에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독서의 계절이다. 여름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여름 내내 준비했던 결실을 거둬들이는 계절이다. 가을이란 말은 '가슬한다' '가실한다'라고도 부르며, 즉 '추수(秋收)'한다는 뜻이다. 문헌에는 가을을 증장천왕(增長天王)이라고 한다. 자타(自他)가 덕행(德行)을 증장 시킨다는 의미다. 잘 익은 곡식을 늘려 수확하고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겨울은 겨시다에서 유래. 가슬이 가을로 굳어진 것처럼 겨울도 겨슬(혹은 겨실)에서 그 어원을 찾아야 한다. 누가 어느 곳에 '있다'는 말을 높여 겨시다(계시다)라고 한다. 여기서 '겨'가 존재(居ㆍ在)를 나타낸다. 따라서 늘 집에 계시는 여성을 일러 우리는 낮은 말로 겨집(계집)이라고 한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 벌판에서 여문 곡식을 곳간 속에 갈무리해 두고 겨울 한 철은 집에서 편안히 쉰다는 뜻으로 '겨울'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라고 한다. 계절별로 겨울을 뜻하며 내년 새 봄의 농사를 위해 편안히 쉬면서 많이 듣고 배우라는 뜻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자연의 오묘한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 스친다. 새 봄 같은 약동과 여름의 풍요, 가을의 결실, 겨울의 참선이 수시로 찾아오고 나간다. 그러나 봄날과 같은 따듯한 시절이라고 해서 자만 할 일도 아니다. 또 명예와 재물이 넉넉한 여름이라 해서 역시 오만 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많은 양의 정신적ㆍ물질적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해도 배불러 해서는 안된다. 대저 넓고 깊은 사색의 산실에서 되돌아보고 나아가는 봄을 기다리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저술이라고 말하는 '성경'에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번성할 때를 유의하라…!”
춘삼월 호시절에 /웬 춘설인가?/ 흩날리는 눈송이를 시나브로 바라보니/
옛 님이 절로 생각나/보문산에 올라/ 한밭벌을 내려다보니/예가 천국인가 하노라!/ (자작시 '보문산 춘삼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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