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란 보령 명천초 교사 |
“응?”
“저 초등학교 때 어린이날에 언니랑 저랑 데리고 동물원 가셨잖아요.”
“내가 그랬나? 허허허”
“네~우리 엄마, 아빠가 저희 데리고 다닐 시간이 없어서 작은 아빠가 꼭 저희 데리고 다니셨잖아요.”
“방학하면 저희도 꼭 챙기시고…. 오늘 어린이날이잖아요. 제가 드리는 어린이날 선물이에요! 꼭 회복하셔야 해요. 헤헤”
병의 심각성을 몰랐던 나는 병원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봉투를 내밀었다. 이를 보시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로 가져가라고 하신다.
동맥경화 말기 판정을 받으셨던 작은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 그 후 한 달이 되지 않아 환갑도 치르지 않은 작은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나셨다. 베풀어주신 많은 것을 조금도 갚지 못했는데, 본인의 병을 알면서도 가족과 고통을 분담하기 싫어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입원을 결정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했던 지난해 5월의 끝자락. 6학년 담임으로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에 매진하자며 아이들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그때 나는 우리 아이들과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얘들아, 너희가 만약 앞으로 한 달밖에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낼래?”라는 나의 물음에 '온종일 게임을 하겠다', '실컷 놀겠다', '어차피 죽을 목숨. 은행을 털어 돈을 펑펑 쓰겠다'는 등등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시간이 한 달밖에 없는데 그런 것을 하다가 시간을 다 써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겠어?”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잠시 침묵한다. 교과서적인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건강하게 열심히 운동할래요. 우리 가족들이 제 아픈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맞아요! 건강이 최고예요. 그러니까 선생님! 너무 공부 공부 하지 마세요.”
“사람 되는 게 먼저라면서요! 그러니까 우리 이번 시간에 체육해요!”
“앗싸! 체육! 체육! 체육!”이라고 외치며 일심단결이 되어 순간 교실은 시끌벅적해졌다.
이렇게 밝고 예쁜 아이들에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주변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했는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하자 가슴이 철렁해졌다.
또 죽음을 너무나 쉽고 가볍게 말하는 요즘 아이들이 걱정됐다.
'이러이러할 때에는 어떻게 할래?'라는 물음에는 맥락도 없이 꼭 한 두명 등장하는 대답이 바로 '때린다', '죽인다'라는 말이다. 폭력과 죽음에 대해 너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해 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입에서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쉽게 말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더불어 살며, 고마워할 줄 알고, 사랑을 베풀며 사는 그런 꽃과 같은 마음으로 나와 나의 아이들이 자라나길 바란다. 내 가족과 이웃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함께 흘릴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이다.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이런 마음으로 자라나길 기대하며 오늘도 헤어짐 인사를 이렇게 나눈다. 때로는 자신 때문에 마음 아팠을지도 모를 친구에게, 오늘 하루 부족한 자신을 잘 견뎌준 나의 짝에 '고맙습니다'라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이 '사랑합니다'라고. 이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비우고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주변을 사랑하다 보면 바로 이곳이 기적이고, 우리가 기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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