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텐트론'이 처음은 아니다. 7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했을 당시 한나라당 맹형규(현 행정안전부 장관) 의원은 한나라당+호남+반노 정치세력이 한 텐트 안에 모이자는 빅 텐트 정치연합을 제안했다. 야당 일각에서도 한때 개혁-진보 연합정당론과 관련해 빅 텐트가 들먹여졌다.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도 19대에는 개헌을 중심으로 새로운 보수세력이 '그랜드 텐트'로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그런 심 대표지만 11일 “국민생각과 합당 없다”고 선을 그었다. 텐트 치기에 상대적으로 핸즈프리 상태인 국민생각 박세일 대표는 12일 MBC 라디오에 나와 “그건(자유선진당과의 합당 여부는) 정말 확인 드리기가 뭐하다”고 했다. 그가 그리는 그림은 국민생각, 정운찬, 친이계, 선진당을 아우르는 비박(非朴ㆍ비박근혜) 보수신당의 빅 텐트인 것 같다.
선진당이 선뜻 세력 규합의 텐트 안에 들지 못하는 정치적인 이유에는 박 대표가 세종시 국면에서 행정도시 충청권 이전은 죽어도 안 된다며 어깃장 놓은 전력도 들어 있을 것이다. 국민생각이 진한 러브콜을 보내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이보다 과하다. 정 위원장에 대해서는 세종시 수정안에 집착해 온몸으로 버티다 충청권 민심을 뒤집어놓은 MB의 바지사장쯤으로 기억하는 충청권 주민들이 꽤 많다.
이런 카드가 수도권과 달리 충청권에는 정반대 입장에서 '먹히기' 힘든 부분이다. 충청인들이 지역 간 정권교체의 꿈을 공주 태생인 정 위원장에게서 찾으려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공(架空)의 시나리오다. 친이계와 정운찬 조합에 박세일 신당, 혹은 선진당이 가세하는 큰 밑그림은 이 지점에서 주춤거린다. 세종시 스토커 같던 정 위원장과 대전ㆍ충남이 지지기반인 선진당이 당장 결합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빅 텐트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남은 길은 몇 갈래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고도 “우파 분열의 씨앗이 되지 않겠다”는 김무성 의원이나 친이계인 청주 흥덕을의 송태영 당협위원장처럼 텐트에 잔류할 수도 있고 텐트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다. 나와서 전여옥 의원처럼 국민신당에 입당하는 방법, 신당 창당이나 무소속 연대, 무소속 독자 출마로 각자도생하는 선택의 길도 있다.
지금으로선 새누리당의 '집단 탈당' 규모와 정 위원장의 결단이 중대 분기점이다. 정 위원장이 셋째 토끼인 위원장직을 조만간 내던지고 넷째 토끼인 보수연대의 중심에서 다섯째 토끼인 대선까지 바라볼지,(첫째 토끼는 서울대 총장직, 둘째 토끼는 국무총리), 이념적 공간 지도의 위치가 모호한 그가 의미 있는 정치적 변인이 될지, 제1당과 제2당의 스윙보터였던 수도권에서 매 때마다 맥 못 추던 제3 정당의 전례를 깬 대안정당으로 뜰지는 그 다음 일이다.
또 빅 텐트, 즉 신당 필요성의 인식을 공유해도 신당 논의와 현실성은 별개일 수 있다. 정당법이 정한 3단계 창당 절차를 거치자면 물리적인 시간도 촉박하다. 그래서 저울질되는 게 4년 전 친박연대의 M&A(인수합병) 방식인데, 이는 텐트를 찢고 나가는 친이계 숫자에 달려 있다. 범보수연합인 그랜드 텐트 아닌 보수 분열ㆍ분화를 의미하는 비박 연대 성격인 '기호 3번'의 빅 텐트, 안 되면 중형 텐트라도 칠까. 말뚝도 못 박을 것인가. 이번 주를 기다려보자.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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