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간데없고 비석 하나 쓸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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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간데없고 비석 하나 쓸쓸히

목척교ㆍ충무로네거리 등 격렬했던 충돌현장 수많은 학생 피흘린 성지 불구 안내문도 없어

  • 승인 2012-03-11 15:44
  • 신문게재 2012-03-12 5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대전 3ㆍ8민주의거-그날의 주인공과 함께 가본 현장은…

▲ 52년 전 3ㆍ8민주의거에 참여했던 <사진 왼쪽부터>우형도ㆍ이강호ㆍ이성숙씨와 당시 현장을 다시 걸었다.
<br />사진=이민희 기자
▲ 52년 전 3ㆍ8민주의거에 참여했던 <사진 왼쪽부터>우형도ㆍ이강호ㆍ이성숙씨와 당시 현장을 다시 걸었다.
사진=이민희 기자

<속보>=52년 전 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부정선거 반대', '학원의 자유화'를 외치며 4ㆍ19혁명의 도화선이 됐지만, 현장 어디에서도 역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경찰이 시위 학생들을 1차 진압하던 한밭종합운동장 앞 다리는 복개돼 사라졌고 2차 충돌지점이었던 목척교에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비석만 남아있다.

1960년 3월 8일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로 '3ㆍ8민주의거'에 참여한 우형도(73)ㆍ이강호(70)ㆍ이성숙(72)씨를 지난 주말 중구 충무로네거리에서 만났다.

충무로네거리는 당시 경찰과 시위학생간 격렬한 충돌이 있었던 곳이다. 3ㆍ8민주의거의 산증인인 이들을 충무로네거리에서 만난건 당시의 기억을 선명하게 되살려 내기 위해서다.

지금의 한밭종합운동장 앞 네거리는 당시 보문산에서 대전천까지 이어지는 작은 하천 다리가 있던 곳으로 경찰과 학생들의 1차 충돌이 빚어진 곳이다.

우형도씨는 “학교 담장을 뛰어넘어 거리에 쏟아져나온 학생들이 '부정선거 반대'와 '학원의 자유화'를 외치며 이곳 다리를 건너 시민들이 모여 있던 공설운동장(현 한밭종합체육관)에 진입하려 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경찰들이 다리를 막아서자 우리는 방향을 바꿔 하천 제방을 따라 대전역까지 향했다”고 손가락으로 대전역전을 가리켰다.

독재에 저항한 학생들의 시위에 경찰들은 콜타르를 뿌리거나 연행하는 등 시위 해산에 주력했지만, 주민과 상인들은 학생들의 시위에 응원을 보냈다.

이강호씨는 “구호를 외치며 대전역까지 이동하는 동안 주민과 상인들은 경찰에 쫓기는 학생들을 집에 숨겨주거나 손뼉 쳐 응원해줬다”고 그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하지만, 52년 전 그들이 학원의 자유화와 독재에 저항하며 걸었던 길과 경찰과 충돌해 80여 명의 학생들이 연행됐던 곳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잘 정돈된 시멘트 길이 당시 그 길인지조자 헷갈렸다.

우형도ㆍ이강호ㆍ이성숙씨는 목척교에 이르자 당시 상황을 거침없이 설명했다.

“원동초등학교(현 동구청사)를 거쳐 대전역 앞에 모인 학생들은 중앙로를 걸으며 충남도청까지 행진을 벌이다 목척교 앞에서 다시 한번 경찰과 맞닥뜨립니다.”

경찰이 막아선 목척교 뒤편은 당시 시청과 도청의 행정기관이 자리한 대전의 중심지로 시위대를 통과시킬 수 없는 마지막 저지선이었다.

그리고 3ㆍ8민주의거 이튿날인 3월 10일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 600여 명이 '학원사찰 중지, 구속학생 석방'을 외치며 자양동에서 신안동굴다리를 거쳐 대전역까지 행진을 벌이다 원동 대전우체국 인근에서 경찰과 정체 불명의 단체와 충돌해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목척교 현장에는 '4ㆍ19혁명의 진원지'라는 검은 비석 하나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박혀 있을 뿐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린 거리엔 이들을 기억하는 안내문 하나 없다.

이성숙씨는 “독재에 저항하고 학원의 자유화를 위해 싸웠던 '3ㆍ8정신' 현장을 흔적도 없이 시간만 보낸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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