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두렵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론 가슴 벅찼을 것이다. 당시의 역사적 사건은 천도교가 중심되었고 소위 33인의 종교 대표자들이 함께했다지만, 민중이 주도한 자주독립운동의 쾌거였다. 아마 33인으로 구성한 것은 의도적 숫자였을 것이다. 고종의 인산일(因山日:출상일)인 3월 3일을 생각해서 수를 맞췄을 것이고, 혹은 28수와 5성을 겸한 33천(天)의 뜻을 안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필 3월 1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 사람들은 택일하는데 있어서 항상 신중을 기한 만큼 여러 가지를 짚어보고 날짜를 택했을 것이다.
최치원의 郞碑序文에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종교를 만든[設敎] 근원이요 유불선 삼교(三敎)를 포함하고 있다' 하니, 말이 천지인삼재로서 삼교를 지칭한 것이지 모든 종교를 다 포용하는 도라는 뜻이다. 다만 삼(三)이라는 숫자로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상고시대부터 전해져 온 사상이라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어서 풍류라 했는지 모르지만 삼신(三神)이니 삼성(三聖)이니 우리 민족은 삼(三)의 숫자를 즐겨 써왔다. 『삼일신고(三一神誥)』의 민족경전뿐만 아니라 『천부경(天符經)』의 '하나에서 셋으로 갈라져 나오는[析三極] 원리, 삼도가 귀일(歸一)하는 원리, 모두가 삼일사상을 담고 있다. 태극 속에 삼재를 담고 있다 말해도 된다. 그래서 삼태극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나가 셋으로 갈라지며[一析三極] 만가지로 나뉘고 삼도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원리, 태극 속에서 만물이 들락날락한다[萬往萬來]. 세상사 모두가 태극의 조화속이다. 태극 속에 담긴 3ㆍ1의 원리는 어쩌면 우리 민족이 태극의 씨앗을 간직한 나라이기에 3ㆍ1정신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 3ㆍ1운동으로 자연히 퍼져 나갔을 것이다.
태극기가 있어서 태극민족이라 함이 아니고 본래 우리 민족은 태극기운을 간직한 민족이었다. 동북 간방의 이 땅, 태극정기가 서린 곳이기에 피어나는 꽃도 무궁화다. 씨앗을 살펴보면 태극 모양이다. 태극은 양이 극하면 음이 생하고 음이 극하면 양이 생하므로 '무궁(無窮)'하게 순환한다. 영원무궁의 뜻이다. 그래서 이 꽃을 무궁화라 불렀다. 손가락처럼 꽃잎이 다섯 개라 천지화(天指花)라 불렀던 이 꽃은 단군조선때부터 심었다 하니 민족을 상징하는 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머리에 무궁화를 꽂고 다녔다. 후세의 화랑도는 이 정신을 계승한 것이고, 과거급제한 사람에게 내렸다는 어사화도 무궁화꽃으로 아마 이 뜻을 계승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삼도합일의 정신이 우리 민족의 정서로 전해졌을 것이니 구국선언의 이 날을 3월 1일로 정함은 자연하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사회가 3ㆍ1운동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귀감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정치ㆍ경제의 사회적 갈등과 지역적 분열을 넘어서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염원해서일 것이다. 3ㆍ1운동은 조선민족의 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촉진제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을 국호로 삼게 했다. 대한의 '한(韓)'이란 단군조선의 맥을 잇는다는 의지를 담은 글자다. '한(韓)'자 속에 '정(井)'자의 담긴 내력을 알면 이해될 일이다. 헌법전문에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천명하고 있으니 기실 대한민국이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취지로 보면 될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역사 깊은 나라이기에 고난과 역경에 처할 때마다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단군조선 이래 나라는 바뀌었어도 민족정신은 면면히 이어올 수 있었으니 우리 대한민국은 65년의 짧은 뿌리가 아니라 4345년의 크고도 오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올해 '3ㆍ1절'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민족의 뿌리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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