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민 우송정보대 외래교수 |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하는 험담 중 뒤에서 남의 안 좋은 면이나 태도 등을 이야기 할 때 흔히 '씹는다'라고 말을 한다. 화제가 빈약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잘 알 수 있는 사람을 화두로 삼아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회사 동료끼리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어김없이 상사의 이야기가 화제의 안주접시로 등장하게 되며 상사를 안주 삼아 씹게 된다.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서 어쩌면 불에 살짝 구운 오징어 안주보다 더 맛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징어 안주는 대부분 술값보다 더 비싸게 가격을 받지만 상사를 씹는 안주는 돈도 지불할 필요가 없고 부담이 안 된다. 한 상사를 다 씹고 나서 단물이 쏙 빠지면 꿀떡 삼켜버리고 다른 상사를 또 접시 위에 올려놓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시원치 않으면 또 다른 상사를 접시 위로 올려놓고 인정사정없이 씹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담이 전혀 없다.
회사에서 업무 처리를 하다보면 평소의 불평이나 불만을 동료들에게 털어놓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 불만을 토로하면 카타르시스도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래서 종종 상사를 안주삼아 사정없이 씹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후회하고 탓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곳에서는 대통령한테도 욕설을 한다는데 직장 상사의 흉을 보며 뒷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또한 조직 내에서 건전한 비판은 개선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정도에 따라서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즉 회사에 관심을 높이 사고 있기 때문에 불평이나 불만을 평하는 것이다. 만약 회사에 대한 관심도가 없다면 무관심 무표정으로 일괄되게 침묵으로 회사생활을 지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본인도 후배들한테 안주 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년 후나 10년 후에 승진해서 그 자리에 앉게 되면 그토록 흉보던 상사의 잘못된 점을 그대로 반복해 후배들에게 똑같은 안주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불행은 과거에 자기가 그러한 비판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다는 것이다. '못된 시어미 밑의 며느리가 나중에 더한다'는 속담처럼 어느 경우에는 과거 전임자 보다 한술 더 뜨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때 생각 같아서는 본인이 그 자리에 오르면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같이 생각해보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본인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되면 화장실 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이 다르듯이 마음이 변하는 것을 우리는 측근에서 여러 번 많이 보았다. 이처럼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고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다. 그때 가서 부하직원들에게 씹히는 오징어 안주 신세가 되지 말고 직원들에게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시원한 생맥주가 될 수 있는 길은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가끔 “그때에 내가 뭐라고 씹었던가?”만 생각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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