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화차]지옥으로 가는 불수레에 올라 탄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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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차]지옥으로 가는 불수레에 올라 탄 '그녀'는…

잊히고 싶은 여자, 그녀가 사는법… 걸작소설ㆍ수작영화의 행복한 만남 감독:변영주ㆍ출연:김민희, 이선균, 조성하

  • 승인 2012-03-08 14:18
  • 신문게재 2012-03-09 11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비오는 고속도로 휴게소. 문호가 따뜻한 음료를 사러간 사이 약혼자 선영이 사라진다. 그녀의 집에 가보지만 급하게 이사한 흔적이 역력한 집 안엔 지문조차 남아있지 않다. 문호는 전직 형사인 사촌형 종근에게 도움을 청한다.

길어야 15분쯤 됐을까.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커피를 뽑아 들고 돌아와 보니 '그녀'가 사라졌다.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 사내는 환장할 노릇이다. 그녀는 도대체 왜, 어디로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화차'는 오프닝부터 “그녀는 왜?”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게다가 '그녀'의 이름, 선영이란 이름은 다른 사람의 것이다. 나이도 주민등록번호도 모두 가짜다. '그녀는 누구지?', 그리고 거듭거듭 '그녀는 왜?'하는 질문을 던지며 시선을 단단히 잡아끈다. 양파껍질 벗기듯 한 겹 벗기면 또 다른 진실이 한 겹 드러나는 과정은 마치 퍼즐을 맞추듯 흥미롭다.

변영주 감독은 “자기 자신으로 도저히 살 수 없게 된 한 여자가 그 상태에서도 세상을 살고 싶어서 정말 모든 걸 다했다가 슬퍼지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제목 '화차'는 꽃수레(花車)가 아니라 불수레(火車)다. 그것도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 일본 전설 속의 불수레다. 도중에 내릴 수도 없다. '그녀'는 왜 불수레에 몸을 싣게 된 걸까.

그 포인트를 적확하게,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김민희의 연기는 발군이다. 도회적인 외모와 가냘픈 몸매를 지닌 이 배우는 그저 행복해지고 싶은 평범한 여자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 양파껍질을 벗길 때마다 드러나는 다양한 범주의 얼굴을 빠뜨리지 않고 표현해낸다. 세련된 패션 감각, 모델이라는 출신에 가려졌던 김민희의 진지한 연기 욕심은 신선한 발견이다. 괴물로 변해가는 분기점인 '핏빛 펜션 신'에서 목표물을 제거한 기쁨과 두려움을 드러내는 표정연기는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하다.

불수레가 향하는 지옥은 IMF로 인한 경제 붕괴와 그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 대물림되는 빚, 개인파산, 강자가 약자끼리 서로 물어뜯는 서늘한 우리의 현재다. 그리고 그런 지옥이 빚어낸 괴물은 어딘가 꼭 있을 것만 같다. 김민희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우리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장면에선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느린 호흡으로 정서적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연출이 숨통을 죈다. 인물들의 절박한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억지 부리지 않고 느슨한 듯 전체를 보며 묵직하게 끌고 가는 힘도 좋다. '그녀'의 굴곡진 인생마냥 구불구불한 골목길, 그 자체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차가운 도시의 풍경 같은 배경 하나하나, 불안한 앵글로 구성한 화면 등등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 미스터리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원작과 다르게 변영주 감독이 각색했다. 이른바 '미미 여사'도 영화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데, 걸작소설을 수작 영화로 빚어낸 행복한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매끈하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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