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찬]함진아비 - 백년가약의 전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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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찬]함진아비 - 백년가약의 전령사

[우리문화를 아시나요]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 승인 2012-03-06 14:12
  • 신문게재 2012-03-07 21면
  •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이 봄을 재촉하고 있다. 곳곳의 나무들은 꽃망울을, 들녘에서는 농사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이때쯤이면 새로운 가정을 준비하는 신랑, 신부들의 희망에 찬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찾아 볼 수 있다. 신랑, 신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일은 예로부터 성인식, 장례, 제례 등과 함께 사람이 일생동안 맞이하는 가장 큰 일 가운데 하나로 여겨왔다. 그러므로 일을 치를 때에는 온갖 정성과 예의절차에 따랐다. 온 마을과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일을 치르곤 하였다. 특히 신랑신부가 혼인을 할 때면 한 가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을이 떠들썩하였다.

어느 마을 총각과 처녀가 혼인 말이 오가면 그 소문이 온 마을에 퍼지게 된다. 그러면 온 마을 사람들의 눈과 귀는 총각과 처녀, 그 집안의 일거수 일투족에 쏠리게 된다. 혼인날이 잡혔다는 둥, 총각과 처녀가 어떠어떠한 특성을 가졌다는 둥, 아무개가 중매를 하였다는 둥, 사주단자가 왔다는 둥, 함은 언제 오느냐는 둥 마을의 화젯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함은 온 마을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함에는 신랑 집에서 신부와 신부 집에 보내는 선물이 들어 있었다. 신부의 옷이며 장신구로부터 처갓집에 보내는 온갖 예물과 정성이 담겨있었다. 이 예물이 든 함을 받으면 온 마을의 아낙네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펼쳐 보이며 자랑하고 서로서로 예물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온 마을에 소문이 확 퍼지곤 하였다. 이 함을 받는 일 또한 결혼식에 버금가는 마을축제 가운데 하나였다. 신부 집에 신랑 집의 함이 아무날 아무시 온다고 하면 온 마을 사람들이 신부 집에 모두 모여들었다. 신랑 집에는 신랑친구들이 함을 진 함진아비를 앞세우고 “함사시오. 함사시오” 하면서 떠들썩하게 마을 안으로 들어온다. 들어오긴 오는데 함진아비가 여간해서 신부 집으로 발을 떼지 않는다. 그러면 신부 집 대표가 나아가 성의를 표시하고 온갖 예의를 다 갖춰서 함진아비가 신부 집 문 앞에 다다르도록 갖은 애를 쓴다. 함진아비는 더욱 흥이 나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사설을 늘여놓으면서 신부 집 사람들은 물론이고 온 마을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이때 신부 쪽 마을 사람들이 아궁이 검정을 가져다 함진아비 얼굴에 칠하여 재미있는 모습을 연출하는가 하면 함진아비와 신랑 친구들이 만든 오징어가면을 쓰기도 하였다.

이러한 실랑이 끝에 온 마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함진아비가 진 함을 끌어내려 신부어머니가 가져온 상 위에 내려놓으면 “함 받았다”고 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끝난다. 이 과정에서 함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신랑 측과 한바탕 큰 소동이 일고 옷이며, 단추가 만신창이가 되기도 한다. '함받기'가 끝나면 함을 풀어 구경하고 잔칫상을 내어 모두가 흥겨운 하루를 보내면서 신랑, 신부의 행복을 빌곤 하였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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