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주 자료조사부 차장 |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이처럼 치명적인 독성은 '더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을 채워주는 데 쓰이기도 한다.
미용성형에 사용하는 보톡스는 바로 이 보툴리늄균에서 얻는 독소다. 뱀의 독이나 봉독(蜂毒) 또한 화장품을 만드는 데 응용된다. 뱀독과 유사한 성분인 펩타이드를 첨가한 화장품은 주름이 생기는 것을 억제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뱀의 독이 피부를 마비시킨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화장품이다. 뱀독은 치과나 안과 등에서 지혈제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국내에서 현재 대량생산이 가능한 재조합 지혈 효소를 개발하는 중이다. 사람에게 해롭기만 할 것 같던 독의 화려한 변신이다.
반면 세상살이에 유용해야 할 도구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말[言]이 그중 하나다.
임산부 폭행녀, 국물녀, 슈퍼녀…. 지난 몇 주 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한 온갖 '녀' 역시 말과 말이 만들어냈다. 음식점 종업원이 임산부의 배를 걷어찼다는 '임산부 폭행녀', 한 여성이 어린이에게 된장 국물을 뒤집어 씌워 화상을 입혔다는 '국물녀', 중년 여성이 편의점까지 따라와 여학생을 폭행했다는 '슈퍼녀'. 소위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전후사정이 밝혀지기 전까지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악플)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상황이어서인지 온라인상에서의 말은 걷잡을 수 없이 거칠고 험해진다.
실상은 일방적인 폭행도, 이유없이 쏟은 국물도 아니었다. 쌍방책임에 의한 사건이었다. 물론 폭행 자체가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정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과 인터넷을 타고 쏟아진 비난은 '마녀사냥'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심리학에서 마녀사냥은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본다. 중세사회에서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마녀라는 희생양을 통해 해소하고 심리적 안정을 느끼게 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제로 사용했다. 지배층에 의해 희생양이 만들어졌던 그 시대와 달리,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발달한 현대엔 서로 희생양을 만들고 마녀사냥에 나선다. 이런 집단 히스테리 현상은 각박한 세상을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우리의 자화상이다.
공포의 대상였던 독(毒)이 약으로 쓰이는 시대다. 하물며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 수단이 돼야 할 말에 독을 잔뜩 발라야 할까. 힘든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독을 품은 말 대신 서로를 응원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 “힘내!”
김은주ㆍ자료조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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