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의용 대전대 교수, 교수학습개발센터장 |
여러 대학교수들에게 교수법 강의를 하면서 요즘 대학생들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수업 태도가 나쁘다”, “무례하다”는 대답이 빠지질 않는다. 얼마 전 뉴스위크가, '인터넷이 죽인 것'으로 집중력, 예의를 꼽았는데 공감이 간다. 수업 중 휴대전화 만지작거리기, 옆 사람과 잡담하기, 졸기, 멍 때리고 앉아있기, 지각하기 등. 필자가 보기에도 학생의 3분의 1은 듣고, 3분의 1은 듣다 말다 하고, 3분의 1은 아예 안 듣는 것 같다.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교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중고등학교라는 중등교육과정이 대학 입시 준비과정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라는 중요한 명제는 보류한 채 “어느 대학에 갈 것인가”가 존재 목적이 돼버렸다. 이 때문에 정작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들은 대부분 생략돼버린다.
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교육선진국에서는 운전면허시험처럼 학습단계별 목표만 넘으면 합격이다. 15세 아이들의 주당 공부하는 시간은 30시간을 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학교에는 학습목표란 게 없다. 몇 등이냐만 중요하다. 1학년생이 3학년 과정을 공부하기도 한다. 주당 공부하는 시간은 50시간을 넘는다. 집, 학교, 학원만 오가며 공부하고 시험만 보며 산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지치고 좌절하며 자신을 '불량품'으로 여기게 된다.
'무조건 외워 열나게 외워 /머리가 깨져라 외워도/시험은 캄캄한 벼랑 끝이야 /성적도 불량 복장도 불량/그나마 얼굴마저 불량/우리는 어쩔 수 없는 불량품' (주현신 작사 작곡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
그렇게 하고 대학에 진학하니 여러 문제가 생긴다. 아주 낮은 자존감, 몸에 밴 '열나게 외워' 식의 학습방법, 비전이나 적성이 아니라 성적에 맞춰 선택한 전공 앞에서 교수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필자가 가르치는 대학에서는 올해부터 중등교육이 생략한 부분을 보완하는 프로그램을 1년간 모든 신입생에게 필수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번 학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일으켜 세운다!', 다음 학기에는 '내 인생은 내가 설계하고 내가 주도한다!'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반론도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시작했다. 그러나 때를 놓친 교육이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경영학에 1:10:100의 법칙이란 게 있다. 불량이 생길 경우 즉시 고치면 1의 원가가 들지만, 그냥 넘어가면 10의 원가가 들고, 고객의 손에 들어가면 100의 원가가 든다는 얘기다. 교육에도 마찬가지다. 직전 과정에서 생략한 것을 다음 과정에서 해결하려면 많은 원가가 들고, 그나마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대학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기업은 '불량품'을 양산하지 말라고 클레임을 걸고 있고, 중등교육에서는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채 학생들을 진학시키고 있고, 정부나 학부모는 등록금을 내리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 제목처럼, 제발 각 교육과정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르쳐야 할 것만 제대로 가르쳤으면 좋겠다. 가정에서부터. 교육에도 1:10:100 법칙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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