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찬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작년 4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전북 김제시 금구면의 한 시골마을에서 86억원이 넘는 돈이 느닷없이 발견된 사건이다. 이 거액의 돈다발은 마늘밭 땅속 깊이 묻혀 있다가 경찰이 현지조사를 벌임으로써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땅에서 저절로 솟아나거나 뿌리를 내려 자라났을 리 없는 돈의 출처에 대해서도 한 동안 사회적인 관심이 빗발쳤는데, 경찰 조사결과는 다시 한 번 더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돈이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추가로 조사한 결과 액수가 110억원으로 더 늘어났고, 그 검은 뭉칫돈을 몰래 보관하면서 연루된 인간들끼리 벌인 온갖 잡스러운 일들까지 밝혀지면서 여론의 관심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현지주민들은 자기들 발밑에서 벌어진 해괴한 일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했고, 외지인들은 또 문제의 그 마늘밭을 호기심 섞인 눈으로 구경할 양 잦은 발길을 이어나갔다. 어수선한 와중에 기사 속 사진을 통해본 마늘밭 돈다발은 모두 5만원권 지폐로 차곡차곡 묶여 있었다.
5만원권 지폐가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소식이다. 2009년 6월 첫선을 보인 이후 5만원권은 누적액수 28조원, 총 5억6000만장이 발행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5만원권은 10장 중 6장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4장에 해당하는 5만원권이 어디에 있는지 그 소재가 불분명한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일반인들의 지갑에 있거나 금융기관에 예치된 경우도 있겠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재산과 불법소득을 숨기려는 사람들의 금고나 장롱, 땅속 깊이 잠겨 있을 수도 있다. 검은 뭉칫돈일 경우에는 그럴 가능성이 더한 것이 앞서 소개한 현금결제 수술비용이나 도박사이트 불법수익금의 사례가 보여준다.
돈은 '돈다'는 동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견해가 확인하기 곤란한 민간어원설이기는 하지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도는 것이 돈이고 그렇기 때문에 돈은 돌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생각에 비추어 볼 때 정설은 아니지만 또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돌려세우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돈이 돌아야 경기가 풀어지고 돈이 돌아야 산업도 일어나는 법이다. 그렇기에 박 한 통에서 꾸역꾸역 돈이 쏟아져 나오자 흥부가 좋아라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얼시구 절시구 돈 봐라 돈돈 봐라. 잘난 사람도 잘 생긴 돈 못난 사람도 잘 생긴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갇혀 있던 돈이 풀려난 것이다.
한 학기가 끝나고 다시 한 학기가 시작하면서 학생들 얼굴도 많이 바뀌고 있다. 누구는 휴학을 해 잠시 학업을 접어두기로 하고 또 누구는 복학을 해 접어둔 학업을 다시 이어가려고 한다. 휴학을 하고자 찾아온 학생들에게 휴학 사유를 확인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경제사정으로 휴학을 하겠다는 학생들을 대하게 되면 마음이 짠해지고 만다. 등록금도 인하되고 국가장학금도 지급될 터인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겠느냐고 말은 건네보지만 마음이 헛헛해지는 것은 나나 그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번 학기에도 몇 명의 학생들이 학업을 접고 학교를 떠났다.
남아 있는 학생들 중에도 가계곤란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적지않이 있다. 그럭저럭 등록은 했어도 생활비와 용돈까지 부모에게 의존하기가 어려운 경우다. 그들은 보통 학업시간을 쪼개어 시급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충당한다. 강의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은 그들이 성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밤을 낮 삼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춘들이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으나 이런저런 사정을 알고 난 후에는 이제 그런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 돈이 돌지 않고 또 돌아도 한쪽으로만 도는 사회가 빚어낸 청춘들의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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