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만물을 생하게 하는 목기(木氣)가 들어선다는 날이다. 1근(斤)은 16냥(兩)이다. 즉 입목(立木)인 입춘의 절기로부터 16일 되는 때가 곧 우수 다음날이다. 우수 날이 되어야 진정 새로운 한 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니 신(新)자는 많은 것을 엿보게 해주는 글자다.
『예기』에 '동풍이 해동하니[東風解凍], 칩거한 벌레가 비로소 나오고[蟄蟲始振] 물고기가 얼음 위로 올라오고[魚上冰] 수달이 물고기 늘어놓고 제사지내고[獺祭魚] 기러기가 돌아온다[鴻鴈來]'했다. 입춘의 목덕(木德)을 찬양한 글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칠정산내편』에는 예기의 글을 우리의 기후에 맞게 우수 날에 적용했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 적어도 우리나라는 대동강 물이 풀려야 진정 봄이 왔다 말할 수 있으니, '온 세상 봄'이라는 소강절 선생의 '삼십육궁도시춘(三十六宮都是春)'이란 시구가 이와 부합하리라.
봄이 되면 따뜻한 양기(陽氣)를 받아서, 꽁꽁 언 땅이 얼음 녹듯이 풀어진다. 봄바람 한 번 불면서 잠들었던 미물들이 꿈틀거리고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음양이 사귀는 뜻이요 건곤(乾坤)이 교태(交泰)하는 모습이다. 옛 사람들은 이를 '풀해(解)'자로 설명하고 있다. 해동(解凍), 해빙(解氷)이 그런 뜻들이다.
해(解)자는 '뿔각(角)'변에 '칼도(刀)'와 '소우(牛)'자를 합했다. '칼로 소뿔을 친다'는 이야긴데 그래서 소 잡는 뜻으로 해우(解牛)라 표현하기도 한다. 여러 가축 중에 소는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을 많이 쓰는 동물이다. 가죽이 뼈의 견고한 것과 이어져 있는 것이 소만한 것이 없고, 또한 몸집이 커서 가죽을 벗겨 내는데 힘을 많이 소모하므로 풀기[解]가 가장 어려운 소를 갖고 '풀해(解)'자의 글자를 만든 것이다. 『주역』에 뇌수해괘(水解卦)가 있다. 우레가 생기고 비가 내려서 천지가 풀어지는 뜻으로 해괘(解卦)를 설명하고 있다. 해괘 상전(象傳)에 '갑탁(甲坼)'이라는 글도 있다. 갑(甲)은 껍질 안에 씨앗이 들어 있는, 아직 싹트기 전의 모습이다. 탁(坼)은 '벌어질탁(坼)'자다. 껍질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갑(甲)을 쪼개서 벌리면 문(門)자가 된다. 만물은 문을 통해서 출입하니 신(申)자는 초목이 땅 위에 솟은 모습이다. 아래로 뿌리가 생기고 위로 싹이 돋는 모습이니 갑탁 역시 초목이 풀어지는 뜻으로 설명한 것이다.
천지도 풀리고 초목도 풀리듯이 인사(人事)에도 풀어야 할 것이 있다. 좋은 감정이야 굳이 풀 필요가 없지만 과거에 묵었던 좋지 않은 감정이나 원한, 이런 것들은 풀어야 할 것이다. 너와 내가 풀어야 할 것도 있지만 단체간·계층간에도 풀어야 한다. 그런데 천지가 풀리고 초목이 풀리는 것은 때가 되면 자연히 풀리겠지만 얽히고설킨 세상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봄날 풀어지듯이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보면 인생사는 시종 묶고 푸는 과정의 연속이라 하겠다. 묶어야 할 일은 논외로 하고, 임진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나 개인이 풀어야 할 일도 많지만 우리 사회에 풀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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