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국]봄날 풀어지듯 풀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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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국]봄날 풀어지듯 풀 수 있다면…

[주역과 세상]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승인 2012-02-26 13:18
  • 신문게재 2012-02-27 21면
  •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동장군이 꽃피는 봄을 시샘한다 해서 '꽃샘추위'라나? 그렇게 맹위를 떨치던 한파도 우수(雨水)가 지나자 한풀 꺾인다. 모두가 때를 따라서 질서를 이루니 역시 때를 거스르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이제 동풍은 불어오고 봄이 오려나 보다. 봄은 1년 한 해의 시작이다. 달로는 인월(寅月)의 정월이요 대개는 입춘(立春)을 기준으로 봄을 삼는다. 입춘은 24절기의 하나로 태양력을 기준한 것이고, 우리가 맞이하는 설날은 태음력상의 달을 기준한 음력 초하룻날이 된다. 음력이든 양력이든 모두 만물이 소생하는 인월(寅月)을 새 해의 시작으로 삼고 있다. 봄이란 '본다'는 뜻이다. 만물이 출생해서 모습을 보이므로 '봄'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대개 우리나라의 봄은 제주도에서부터 시작 삼지만 삼천리강토가 봄이 오려면 우수(雨水)가 지나야만 된다. 입춘으로부터 15일께지만 동지로부터 60일째를 우수로 보면 된다. 대개 양력으로는 2월 19일이다. 봄이 되면 만물이 모두 새롭다. 그래서 '새봄'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새롭다'는 신(新)자를 파자하면 '立+木+斤'의 합성자다. 입목(立木)은 입춘을 의미한다.

만물을 생하게 하는 목기(木氣)가 들어선다는 날이다. 1근(斤)은 16냥(兩)이다. 즉 입목(立木)인 입춘의 절기로부터 16일 되는 때가 곧 우수 다음날이다. 우수 날이 되어야 진정 새로운 한 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니 신(新)자는 많은 것을 엿보게 해주는 글자다.

『예기』에 '동풍이 해동하니[東風解凍], 칩거한 벌레가 비로소 나오고[蟄蟲始振] 물고기가 얼음 위로 올라오고[魚上冰] 수달이 물고기 늘어놓고 제사지내고[獺祭魚] 기러기가 돌아온다[鴻鴈來]'했다. 입춘의 목덕(木德)을 찬양한 글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칠정산내편』에는 예기의 글을 우리의 기후에 맞게 우수 날에 적용했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 적어도 우리나라는 대동강 물이 풀려야 진정 봄이 왔다 말할 수 있으니, '온 세상 봄'이라는 소강절 선생의 '삼십육궁도시춘(三十六宮都是春)'이란 시구가 이와 부합하리라.

봄이 되면 따뜻한 양기(陽氣)를 받아서, 꽁꽁 언 땅이 얼음 녹듯이 풀어진다. 봄바람 한 번 불면서 잠들었던 미물들이 꿈틀거리고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음양이 사귀는 뜻이요 건곤(乾坤)이 교태(交泰)하는 모습이다. 옛 사람들은 이를 '풀해(解)'자로 설명하고 있다. 해동(解凍), 해빙(解氷)이 그런 뜻들이다.

해(解)자는 '뿔각(角)'변에 '칼도(刀)'와 '소우(牛)'자를 합했다. '칼로 소뿔을 친다'는 이야긴데 그래서 소 잡는 뜻으로 해우(解牛)라 표현하기도 한다. 여러 가축 중에 소는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을 많이 쓰는 동물이다. 가죽이 뼈의 견고한 것과 이어져 있는 것이 소만한 것이 없고, 또한 몸집이 커서 가죽을 벗겨 내는데 힘을 많이 소모하므로 풀기[解]가 가장 어려운 소를 갖고 '풀해(解)'자의 글자를 만든 것이다. 『주역』에 뇌수해괘(水解卦)가 있다. 우레가 생기고 비가 내려서 천지가 풀어지는 뜻으로 해괘(解卦)를 설명하고 있다. 해괘 상전(象傳)에 '갑탁(甲坼)'이라는 글도 있다. 갑(甲)은 껍질 안에 씨앗이 들어 있는, 아직 싹트기 전의 모습이다. 탁(坼)은 '벌어질탁(坼)'자다. 껍질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갑(甲)을 쪼개서 벌리면 문(門)자가 된다. 만물은 문을 통해서 출입하니 신(申)자는 초목이 땅 위에 솟은 모습이다. 아래로 뿌리가 생기고 위로 싹이 돋는 모습이니 갑탁 역시 초목이 풀어지는 뜻으로 설명한 것이다.

천지도 풀리고 초목도 풀리듯이 인사(人事)에도 풀어야 할 것이 있다. 좋은 감정이야 굳이 풀 필요가 없지만 과거에 묵었던 좋지 않은 감정이나 원한, 이런 것들은 풀어야 할 것이다. 너와 내가 풀어야 할 것도 있지만 단체간·계층간에도 풀어야 한다. 그런데 천지가 풀리고 초목이 풀리는 것은 때가 되면 자연히 풀리겠지만 얽히고설킨 세상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봄날 풀어지듯이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보면 인생사는 시종 묶고 푸는 과정의 연속이라 하겠다. 묶어야 할 일은 논외로 하고, 임진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나 개인이 풀어야 할 일도 많지만 우리 사회에 풀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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