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수]장애인의 반대말은?

  • 오피니언
  • 사외칼럼

[한일수]장애인의 반대말은?

[세설]한일수 대전충남 민언련 공동대표, 두리한의원장

  • 승인 2012-02-22 14:26
  • 신문게재 2012-02-23 21면
  • 한일수 대전충남 민언련 공동대표한일수 대전충남 민언련 공동대표
▲ 한일수 대전충남 민언련 공동대표, 두리한의원장
▲ 한일수 대전충남 민언련 공동대표, 두리한의원장
인생을 살면서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자주 겪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다면? 그것도 너무 밋밋한 삶이 아닐까. 나는 몇 번의 경험을 갖고 있는 바,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적어보려 한다.

서른 중반 즈음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고 정신이 없었다. 논문 제출 기한은 다가오는데 실험 결과가 나오질 않아서 애가 타들어 가던 참이었다. 일주일이면 두세 번씩 당시 실험을 진행하던 충북대를 방문했다. 볼일을 본다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충북대 학생회가 붙인 조그만 스티커 하나가 이렇게 묻고 있었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나는 습관적으로 정상인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답이 아니었다. 그 스티커엔 작은 글씨로 “장애인의 반대말은 비장애인입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받은 충격은 사실 망치 이상이었다. 그날 실험 결과를 받아들고도 건성으로 훑어볼 뿐, 그 문구에 담긴 뜻을 곱씹느라 머리가 먹먹했더랬다. 16년이 지났다. 세월과 함께 다행히 우리는 진보한다. 이제는 장애인의 반대말을 물어보면 똑똑한 학생들은 바로 비장애인이라고 답한다. 내가 겪었던 충격도 더 이상 새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당연한 상식이 돼버렸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얼마 전 법원에서 내린 판결을 보면서, 아직도 이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1급 시각장애인인 원고는 혼자 목욕탕에 입장하려다 주인의 제지를 받고 입장을 거절당한다. 이에 분개해 정신적 피해보상 소송을 냈고, 법원은 다음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시각장애인인 원고가 목욕탕 내에서 시설을 이용하던 중 사고가 발생하면 업주인 피고가 그 책임에서 언제나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고, 피고가 동성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원고를 목욕탕에 입장하게 하는 것은 피고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정신적 손해의 배상을 청구한 원고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

나는 이러한 판결이 일견 온당해보이지만, 시대정신인 평등과 복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정면으로 거스른 '닫힌 판결'이라 생각한다. 1급 시각장애인이라면 뜨거운 물이 있고 바닥은 미끄러우며 옷을 벗어 보관해야 하는 등 혼자 힘만으론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고를 염려한 목욕탕 주인이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거절한 것은 자기 방어를 위해서 정당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은 정당한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정당하지 않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이 다른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장애인에 비해 사회적 강자인 비장애인들의 의무이자, 이 사회를 좀 더 따뜻하고 평등한 곳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인식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모두 학교폭력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한다. 그러면서도 피자가 늦게 배달됐다고 몽둥이로 배달원을 두들겨 패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학교폭력과 피자 배달원 폭행 사건이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학교 폭력은 이 사회가 강한 자, 가진 자에게만 온정을 베풀고 쌍용차 노동자나 성적 소수자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적 소수에게 가하는 폭력의 학교판일 뿐이다.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이란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1급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거절한 주인은 처벌 받아야 하고, 음식을 배달시키려면 음식값에 버금가는 비싼 배달료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사회적 약자들도 강자와 함께 평등해지지 않겠는가.

망치로 머리를 자주 두들겨서야 뇌가 견딜 수가 없겠지만,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언제 어느 순간에 사고가 우리를 덮칠지 알 수 없다. 길거리에 좀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 그들이 격리나 수용이 아니라 출근이나 학습을 할 때, 우리는 야만의 사회가 아닌 사람의 사회에 살고 있게 된다고 믿는다. 그게 바로 잠재적 장애인인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2.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