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저린 한 인간의 생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삶의 무게와 기쁨.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
혹, 인생에 있어 숨은 '보석'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류준화, 이진경, 박석신, 성광명, 정순자 작가의 작품 |
예술은 우리가 영위하는 그 어떤 문화적 형태보다 인간의 실제 생활과 깊은 영향 관계를 맺고 있다. 가혹하면 가혹한 대로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예술 속에 녹아든 삶은 작품으로 승화되며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삶과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전시 '인생이여 고마워요'가 대전 시립미술관 창작센터에서 24일부터 5월 20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름답고 진솔한 삶을 사는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객에게 소개해 예술 본성의 한 단면인 위로와 위안을 준다. 삶을 예술처럼, 세상을 예술처럼 이웃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들은 우리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달한다. 5인 5색으로 엮일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작품 50여 점이 각각 영역별로 전시된다. 전시 도록에는 미술사가나 평론가의 글이 아닌 작가 주변의 지인의 글을 실어 작가들의 삶을 엿보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또 부대행사로 작가와의 만남 시간도 준비했다.
▲류준화=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산골짜기 경북 봉화 비나리마을에는 문명의 혜택을 덜 누리는 대신 대자연이 주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며 작품 활동을 하는 류준화 작가가 있다. 넓은 작업실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희망에, 귀농을 결정한 남편을 따라 15년 전 그녀는 이곳에 내려와 결심했던 의지대로 집요하고 치열하게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자 태어난 사람처럼, '나는 치명적이다'라는 책에 등장하는 것처럼 작품을 제작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몽땅 불어 넣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산골미술관을 운영하며 예술을 매개로 이웃과 훈훈한 정도 나누고 마을에 활기도 불어 넣는 공동체적 삶으로 또 하나의 자화상을 그려가고 있다.
▲성광명=경남 하동 악양의 지리산 자락, 그곳에 수줍은 노총각 성광명이 살고 있다. 집 앞마당 가득 쌓인 대나무를 보고 공예가인 걸 금방 알 수 있고, 집에 들어서면 기타며 각종 악기가 즐비한 걸로 봐서 이곳이 동네밴드 본거지인 것도 알 수 있다. 이웃에 사는 사진작가와 잡지기자도 오고, 농부도 곶감을 들고 오면 밤은 깊어가고 술잔도 기울여지면 하루가 가고 새벽이 온다. 멀리서 객으로 찾아갔던 나그네는 한밤을 꼬박 새우고 그곳을 나올 때까지 지리산 주민이 되어 있다. 지리산 자락 하동 악양 땅에 옻칠 공예가이자 동네밴드 리더이며, 지리산학교 선생인 전방위 아티스트 성광명이 살고 있다.
▲정순자=공주 반포면 상신리 도예촌에 가면 하얀 머리를 색색 고무줄 여섯 매듭으로 양 갈래로 묶고 빨간 핀을 꽂은 도예가가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다. 행색은 소녀인데 올해 나이 50세. 자신의 삶을 빚 듯 정순자 작가는 도자기를 빚어 낸다. 큰 눈을 두 번 깜빡이다 계룡산 문필봉을 향해 멈출 쯤이면 명상에 잠긴 듯 고요하기도 하고, 과거의 어느 시점에 잠겨 있는 듯하기도 하다. 말문을 열게 되면 그랬지요, 호호 나도 그래요 하며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고, 온종일 같이 수다를 떤 것 같은데 다음날 가보면 불 속에서 견뎌낸 그녀의 분신들이 수북히 건져 올려지고 있다.
▲이진경=재기 발랄, 단순무식, 직선적이고 긍정적인 이진경은 강원도 홍천의 작업실을 잠시 떠나 파주 헤이리마을 쌈지 농부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일상적인 소재를 특유의 미감으로 쓱쓱 그려내는 그녀의 작품은 '나도 작가다'라고 예술적 자신감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편안하고 웃음 짓게 하는 단순명료한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순진무구했던 어린 시절의 습작이 생각나고 키치에 대한 향수마저 일으킨다. 게다가 그녀의 모습은 어떤가. 스티치가 듬성듬성 보이는 소위 말하는 헐렁한 똥싼바지에 파랑색 반팔 남방, 그 안에 꽃무늬 티셔츠를 입고,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는 머리에는 색동 핀을 꼽고 있으니, 우리로 하여금 한 번쯤 손을 흔들며 아는체하고 싶어지게 한다. 이진경이 움직이는 일상 반경은 바로 예술현장이 되는 타고난 예술가다.
▲박석신=공중파 방송의 '화첩 기행' 리포터로 우리에게 친숙한 박석신은 늘 하늘을 바라본다. 주로 길에서 그려지는 그의 그림은 주변의 풀을 뜯고 꽃을 묶어 그것으로 곧바로 그려낸다. 현장의 시간성도 담고 그곳 주민들의 소박한 심성도 담아낸다. 재료를 먹과 붓 이외에 풀, 꽃, 흙, 숯 등의 자연물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하나의 대상물로 바라보는 차원을 넘어 옛 선인들의 구도자적 삶을 뒤따르고자 하는 무위자연의 예술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상을 간결하면서도 치솟는 기세로 표현하는 그의 작품에는 만물이 생성화육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큰 슬픔을 경험했던 박석신의 생에 대한 깊은 애착에서 나온 것임을 짐작케 한다.
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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