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대왕의 이런 품성은 천성(天性)이었을까요. 학자들은 길러졌다는데 한뜻입니다. 세종은 '사저에 있을 때는 물론 즉위 후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식사 때도 반드시 책을 좌우에 펼쳐놓았다'는 '독서광'이었습니다. 방대한 독서로 지식을 얻되 공리공론보다는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산지식'을 선호했지요. 얻은 지식을 세상에 펴려니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고 소통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는 것이지요. 세종은 신하에게도 묻고 과거 시험을 보러 온 유생에게도 물었습니다. 독서를 통해 예지(叡智)를 갖추고, 소통으로 경륜(經綸)을 쌓고, 경륜이 실천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또한 신하들에게도 끊임없이 독서를 권유했습니다. 집현전을 만든 것도 관직에 오르면 공부를 멀리하는 신하들에게 자극을 주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범국가적 지적 능력 향상을 위한 '독서경영'이 태평성대를 이룬 토대는 아니었을까요. 염홍철 대전시장이 강조하는 '독서경영'이나 휴가를 주어 책을 읽도록 권하는 '사가독서'는 모두 세종의 것을 본받은 것입니다.
앞뒤 꽉꽉 틀어막고 눈 뜨면 선거만 떠드는 시절에 웬 세종대왕이며 독서이야기인가, 궁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올해가 무슨 해일까요. 선거의 해? 맞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정한 '국민 독서의 해'랍니다.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맞받고 싶은 정부가 벌이는 일이긴 합니다만 '책을 읽자'는 권유만큼은 나무랄 게 아닙니다. 우리만 하는 것도 아니지요. 영국은 1998년에 이어 2008년을 독서의 해로 지정했고 정부와 민간단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연중 독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가까운 일본도 2010년을 독서의 해로 운영했습니다. 호주는 우리와 같이 올해가 독서의 해입니다.
세계적인 독서 장려 캠페인은 인터넷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가속화되는 '활자 이탈' 현상을 국민 계몽 차원에서 '문제'로 보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찾고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책장을 넘기며 뒤적이는 모습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책이 아니더라도 유익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과 도구는 널려있으니까요. 인터넷에 익숙하고 다양한 미디어에 더없이 친숙한 이들에게 몇 번의 클릭만으로 해결될 일을 굳이 도서관의 서고를 뒤져 해결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읽는 것으로 치자면 요즘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습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읽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인터넷에서 무수히 많은 정보를 읽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과연 '읽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읽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잊힌다면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에 가까울 것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글과 소통하는 것이며 '생각한다'는 것과 거의 같은 뜻입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집중해야 하는 책 읽기는 자신만의 논리를 이끌어내고 상상력을 통해 독자적인 생각을 키우는 일입니다. 깊이 읽을수록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국민 독서의 해'는 바로 생각하는 국민이 되자는 뜻입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올해, 세종처럼 방대한 독서와 사색을 통해 나라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제시하는 사람을 뽑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책이 없으면 신도 침묵을 지키고, 정의도 잠자며, 자연과학은 경직되고, 철학도 문학도 말이 없을 것”이란 토머스 바트린의 말이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사실 세종은 타고난 독서가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인 태종은 맏이인 양녕의 걸림돌이 될까봐 충녕(세종)을 불러 “너는 할 일이 없으니 놀기나 하라”고 했답니다. 그 때문에 열아홉이 될 때까지 공부는 멀리하고 글씨 그림 악기 같은 잡기를 익혔습니다. 세종은 예능을 먼저 익힌 뒤 책을 읽기 시작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밝아졌는지 모릅니다. 책을 언제 손에 들든 책 읽기가 늦은 때란 결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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