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우]엘리베이터를 없애야 마을이 산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달우]엘리베이터를 없애야 마을이 산다

[시사 에세이]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12-02-20 15:47
  • 신문게재 2012-02-21 20면
  •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지난 17~18일 양일간에 경기 걸쳐 시흥시에서 공주대학교 평생교육실천연구공동체의 동계연수가 있었다. 시흥시 평생학습마을로 선정된 참이슬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참이슬아파트에서 추진하고 있는 '골목문화 살리기' 운동에 대해 들었다. 다른 좋은 프로그램도 많았지만, 나는 그 중에서 골목문화 살리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도회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이 사라졌고 당연히 골목문화 또한 씨가 마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골목문화를 살리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골목문화가 살아나면 마을이 살아날 것이고, 마을이 살아나면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마을은 어떤 것인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마을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여 산다고 해서 다 마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녕 마을이 되려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왕래해야 한다. 이웃이 되어야 한다. 왕래한다고 다 이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고가는 손길에 인정(人情)이 묻어나야 한다. 인정으로 오고가는 이웃이 모여 살아야 비로소 마을이 되는 것이다. 마을에는 사람 냄새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웃끼리 왕래하는 것을 '마실(마을) 다닌다'고 말한다. 이웃간에 무단히 마실을 다닐 까닭이 없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고 할 만큼, 서로 정이 들고 마음이 내키니 마실을 다니는 것이다. 이웃사촌의 정을 실어 나르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말(마을)'이다. 이런 말들이 쌓이면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웃끼리 함께 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마을이라는 말이다.

결국, 마을이란 구불구불한 고샅길이나 동글납작한 초가지붕 아래 함께 사는 이웃의 사람 냄새와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그러나 초가집이 아파트로 바뀌고, 고샅길이 엘리베이터로 바뀌면서 정감 어린 시골마을의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도시가 마을에 서린 사람 냄새와 그들의 이야기까지 삼켜버리고 말았다. 도시에서 마을이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생경(生硬)하고 낯설기만 하다.

골목이 무엇인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 있는 좁은 길이다. 고샅, 고샅길이라고도 하며, 마을 사람들이 왕래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대체로 시골마을은 수평적으로 확장되게 마련이다. 또 그때마다 고샅길이 생기고, 사람들은 고샅길을 돌아 천천히 걷기도 하며, 들에도 나가고 장에도 간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게 고샅길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이 되어 다양한 삶의 무늬가 아로새겨지고 이야기가 서리게 되는 것이다.

아파트나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시골마을의 고샅이나 골목과 같은 것이지만, 엘리베이터는 수직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수평적인 시골마을의 골목길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가 아파트에서 사람 냄새와 이야기를 잡아먹는, 마을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도시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은 누구나 옆을 보지 않는다. 위아래만 생각한다. 엘리베이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벽면에 걸린 거울을 봐도 자신만 본다. 이것이 엘리베이터로 상징되는 현대사회나 문명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트라우마'인 셈이다.

이 엘리베이터 트라우마가 없어야 마을이 살아날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없애고 고샅길로 만들면 마을(아파트) 사람들의 소외와 이질감이 줄어들고 골목문화가 되살아날 것이다. 마을(아파트)에 사람 사는 냄새와 그들의 이야기꽃이 피어날 것이다. 그렇게 마을이 살아나면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없앤다는 것이 현상으로서의 엘리베이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과 관념 속에 자리잡은 엘리베이터를 없애자는 말이다. 아파트와 엘리베이터가 없는 현대사회의 도시문명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