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도회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이 사라졌고 당연히 골목문화 또한 씨가 마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골목문화를 살리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골목문화가 살아나면 마을이 살아날 것이고, 마을이 살아나면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마을은 어떤 것인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마을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여 산다고 해서 다 마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녕 마을이 되려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왕래해야 한다. 이웃이 되어야 한다. 왕래한다고 다 이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고가는 손길에 인정(人情)이 묻어나야 한다. 인정으로 오고가는 이웃이 모여 살아야 비로소 마을이 되는 것이다. 마을에는 사람 냄새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웃끼리 왕래하는 것을 '마실(마을) 다닌다'고 말한다. 이웃간에 무단히 마실을 다닐 까닭이 없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고 할 만큼, 서로 정이 들고 마음이 내키니 마실을 다니는 것이다. 이웃사촌의 정을 실어 나르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말(마을)'이다. 이런 말들이 쌓이면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웃끼리 함께 하는 '이야기'가 있어야 마을이라는 말이다.
결국, 마을이란 구불구불한 고샅길이나 동글납작한 초가지붕 아래 함께 사는 이웃의 사람 냄새와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그러나 초가집이 아파트로 바뀌고, 고샅길이 엘리베이터로 바뀌면서 정감 어린 시골마을의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도시가 마을에 서린 사람 냄새와 그들의 이야기까지 삼켜버리고 말았다. 도시에서 마을이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생경(生硬)하고 낯설기만 하다.
골목이 무엇인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 있는 좁은 길이다. 고샅, 고샅길이라고도 하며, 마을 사람들이 왕래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대체로 시골마을은 수평적으로 확장되게 마련이다. 또 그때마다 고샅길이 생기고, 사람들은 고샅길을 돌아 천천히 걷기도 하며, 들에도 나가고 장에도 간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게 고샅길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이 되어 다양한 삶의 무늬가 아로새겨지고 이야기가 서리게 되는 것이다.
아파트나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시골마을의 고샅이나 골목과 같은 것이지만, 엘리베이터는 수직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수평적인 시골마을의 골목길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가 아파트에서 사람 냄새와 이야기를 잡아먹는, 마을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도시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은 누구나 옆을 보지 않는다. 위아래만 생각한다. 엘리베이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벽면에 걸린 거울을 봐도 자신만 본다. 이것이 엘리베이터로 상징되는 현대사회나 문명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트라우마'인 셈이다.
이 엘리베이터 트라우마가 없어야 마을이 살아날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없애고 고샅길로 만들면 마을(아파트) 사람들의 소외와 이질감이 줄어들고 골목문화가 되살아날 것이다. 마을(아파트)에 사람 사는 냄새와 그들의 이야기꽃이 피어날 것이다. 그렇게 마을이 살아나면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없앤다는 것이 현상으로서의 엘리베이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과 관념 속에 자리잡은 엘리베이터를 없애자는 말이다. 아파트와 엘리베이터가 없는 현대사회의 도시문명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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