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정자 한국춤무리대표 |
10월 계룡산공연을 앞두고 다시 만져야 할 춤 작품의 음악을 반쯤 수정해놓고도, 그리고 어떻게 춤사위를 구성해야겠다고 이미 머릿속에선 정리를 다 해 놓고도 그 형체도 없는 마음은 빈 마음 같은 현상으로 부유하고 있는 듯함을 나는 달리 분석해 낼 수가 없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문구처럼 다른 휴일이면 그냥 푹 쉬었음직도 한데 그 휴일의 아침까지도 작업장으로 향하려 하는 나를 보면 채워지지 않은 한 주를 보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튼 '색깔 없이 선명했다. 소리 없이 강렬 했다'라는 말을 들으며 나도 살고 싶은데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듯 싶다. 무슨 말인가 하면 며칠 전 신문기사에서였다.
미국의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 기자들이 한 말이었다. 국적이나 편견을 떠나 언더독(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것에 대한 약자 )인 작품 '아티스트'에 출연한 프랑스의 배우 장 뒤자르댕에게 남우 주연상을 안겨 준 것에 대해서 대회의 투명성과 그 직분을 다한 심사위원들에 대한 찬사였다. 색깔 없이 선명했고 소리 없이 강렬했다 라고.
그 직분을 다하여. 바로 그 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직분이라는 게 사람마다, 처해 있는 위치와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우선 사람이어야 하겠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스스로 아티스트라고 규정지어놓고 그 직분에 충실,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이었다.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고 싶고 모든 건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고독한(?) 아티스트이고 싶었던 것이다. 하여 그 침묵들이 색깔 없이 선명하고 소리 없이 강렬한 작품으로 탄생되길 바라는 일상을 선택하고도 이렇게 중간 중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라고 아파하는 것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었나 보다. 내가 무가 되고 일체가 무가 되는 상태. 깨닫겠다는 마음도 없는 고요한 상태가 되면 거기에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지. 나는 깨닫고자 하는 대상의 세계를 좇아 가려고만 했지 세상이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진리임을 몰랐다.
“내가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면 스스로 찾아 온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이 과정 중에 있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나였으면 한다. 아프면 아픈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존재에 대한 슬픔 없이는 그 어느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위안했으면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좌선의 결과일까?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그 간단한 진실을 나는 또 새삼 발견한다.
나에겐 색깔 없이 선명하고 소리 없이 강렬한 삶을, 작품을 추구하는 의지가 무엇보다도 내재되어 있고, 끊임없이 영원히 춤꾼이어야 한다고 몰아 붙이는 친구 A. 사람냄새 난다고 인정해주는, 그러나 가끔은 잘 토라져 외면하고 싶을때도 있는 친구 B. 잡히지 않는 마음을 줄곧 주고 있는 친구 C. 연애하자는 말을 마이크 잡고 이야기 하고있는듯 한, 그래서 너털 웃음을 주고 있는 친구 D. 언니의 삶은 치열한 것 같다고, 그러나 그러한 언니의 열정이 부럽다고 좋아해 주고 있는 아우 E. 서로 사는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게 해주고 있는 친구 F.
그들에게 내 마음이 열렸다. 그들이 내 옆에 없다가 아니라 있다는 것으로. 이렇게 그 간단한 진리,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새삼 또 느끼며 차갑게 만 느껴졌던 나의 1월도 흘러갔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