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명렬 대전남부교회 담임목사 |
우리가 잘 아는 '나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작사한 존 뉴튼(John Newton)이라는 사람은 원래 방탕하고 거친 생활을 하며, 노예를 잡아다가 팔았던 노예상선의 선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힘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고, 책으로 써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며칠 전 전남 보성에서 일어난 목사 부부의 자녀 유기 사건은 우리에게 잘못된 신앙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감기와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잡귀를 쫓기 위해서' 부부는 10살과 8살, 5살의 자녀들을 허리띠와 파리채로 때리고, 2주 동안 아무 것도 먹이지 않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목사부부는 자녀들을 때릴 때, 성경에 나오는 대로 '사십에 하나 감한 매'(사도 바울이 당한 형벌로, 유대인들이 죄인을 죽기 직전인 39대까지 때리는 형벌)를 때렸으며, 아이들이 죽은 뒤에도 기도로 살린다고 방안에 시신이 부패할때까지 뉘여 놓았다고 한다. 잘못된 신앙이다.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그것을 맹신해 벌어진 비극이다. 왜 부모의 손으로 자식을 셋이나 죽음에 몰아넣었는가? 부모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다. 그들도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했을 것이다. 문제는 잘못된 신앙이다.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고 그것을 자기 삶에 절대화한 잘못된 믿음이다. 스티븐 아터번(Stephen Arterburn)은 이러한 믿음을 '해로운 믿음(Toxic faith)'이라고 했다. 독이 있는 믿음이라는 말이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믿음이 사람에게 독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이러니할 뿐만 아니라,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해로운 믿음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의 병적 요소다. 여기에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교(邪敎)와 이단(異端)들은 오늘도 길거리에서 그리고 은밀한 곳에서 선량한 시민들에게 마수(魔手)를 뻗치고 있다. 이들은 무지한 백성들은 현혹해 자기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깨어진 가정이 한 둘이 아니고, 이로 인해 가출한 자녀로 탄식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대책이 필요하다.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종교 내에서의 대책이라도 있어야 한다. 최소한 국민들에게 건전한 종교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책이 필요한 현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목사나 신부나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학문의 수업이 필요하고, 임상적인 훈련을 거쳐야 한다. 사람의 영혼과 삶을 다루는 일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진지한 학문의 연구와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신학의 경우에는 최소한 7년 과정의 수업이 필요하다. 서양의 전통에서 다른 학문은 대학과 대학원 과정의 6년 수업이 필요하지만, 신학만큼은 7년의 수업을 요구하는 것은 그 책임을 중요시한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며칠 만에, 혹은 몇 개월 만에 목사가 될 수 있다. 흔한 '장로교'의 간판으로 교회를 세우면 아무런 변별력이 없다. 삶을 이끌 수 있는 영적 수준 즉 영성은 측정할 수 없지만, 최소한의 신학수업과 수련의 과정을 거친 것에 대한 인증은 국가나 종교기관 내에서 할 수 있다. 그 인증으로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를 찾을 수 있게 하고, 이단과 사교가 날뛰지 못하게 하며, 더 이상 해로운 신앙으로 인한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