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영 따뜻한손 대표, 전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
명균씨에게 푸르름씨는 어버이 같은 존재였다. 친척들이 정신지체 1급인 동생을 장애인시설에 보내자고 했을 때 “절대 떨어질 수 없다”며 막아선 것도 그였다. 정신지체 3급인 푸르름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공장에서 야간작업을 해 동생의 병원비를 벌고 생계를 책임졌다. 성인이 돼서 굴착기와 지게차 운전 자격증을 받은 뒤로는 동생을 재활센터에 데려다준 뒤 밤늦게까지 공사장에서 일했다. 건설경기가 얼어붙어 일감이 끊기자 인력시장에서 날품을 팔았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서는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동생 앞으로 나오는 지원금 40여만원은 생계비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치료비 30여만원에 월세를 내고나면 주머니에 한 푼 남는 것이 없었다.
거듭된 생활고는 끝내 실낱같이 희미한 희망의 끈마저 앗아가고 말았다. 형은 결국 '살기가 힘들다. 나 없으면 동생을 보살필 사람이 없어 함께 떠난다. 화장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썼다. 그들이 떠난 집에는 라면 몇 봉지와 형이 동생을 위해 지하철역에서 500원, 1000원에 사온 100여 권의 동화책이 거실 한쪽에 쌓여 있었다. 키 큰 형이 키 작은 동생의 손을 늘 잡고 다녀 '서수남 하청일'이라고 불렸다던 신씨 형제가 가난 때문에 한 많은 생을 마친 한 편에서는 마치 그들의 비극을 조롱하듯, 여야가 앞다투어 천국이 곧 도래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공짜 시리즈에 반값 등록금까지 덤으로 끼워 이미 재미를 본 민주통합당은 고졸 청년들에게 1200만원을 준다고 한다. 취업 준비생과 젊은 창업자들에게도 돈을 나누어 준다. 최근 들어 상종가를 치고 있는 2030세대만 잡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기세다. 매년 들어가는 돈이 무려 33조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돈이지만, 어차피 예산이란 건 네 돈도 내 돈도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경쟁에는 간판을 바꾸고 페인트칠을 다시 한 새누리당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아이들 점심밥도 못 주겠다고 갖은 짓을 하던 시절은 깡그리 잊고, 이제는 전액 무상보육에다 아침급식까지 챙기겠다고 덤비고 있다. 사병 월급은 민주통합당보다 더 후하다. 이것 역시 20대 병사와 30대 주부 표를 낚기 위한 조 단위의 황금미끼다.
복지는 권력자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 있는 생활을 보장하고 계층 간의 격차를 줄여야 하는 정부의 의무다. 생활고를 못 이겨 목숨을 끊을 만큼 양극화가 극심하고, 기업을 하는 사람조차 “IMF 시절보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하소연하는 위기상황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구나 지금은 상생과 동반· 공유와 공존의 시대다.
그러나 복지정책에는 분명한 현실인식과 합리적인 우선순위가 전제돼야 한다. 여태껏 귀 막고 눈 감은 채 시대정신을 외면하다가 선거가 코앞에 닥치자 재벌개혁을 외치고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그들의 속내에 무슨 진정성이 담겨 있는가.
비상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웰빙정당의 재활 여부가 아니고 서민들의 절박한 민생문제다. 박근혜가 눈물을 흘려야 할 곳은 사진기자들 앞이 아니고 신씨 형제의 초라한 빈소다. 시민단체와 노동조합까지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는 게 통합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통합이요, 국민통합이다.
안철수처럼 평생 모은 재산의 반을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 아니라면 광고전단 나누어주듯 선심공약을 남발해서는 안된다.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동화책을 읽고 시를 읊은 사람들이 세상을 등져야 하는 기막힌 현실을 타개할 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보편적 복지를 외치는 것은 위선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품겠다고 나서기 전에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고 인간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 이 한 목숨 다하는 날까지 / 사랑하여도 좋은 나의 사람아…'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람 신푸르름씨가 지난해 9월 시낭송경연대회에서 읊었다는 용혜원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중에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