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조]자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정병조]자비

[목요세평]정병조 금강대 총장

  • 승인 2012-02-08 13:25
  • 신문게재 2012-02-09 20면
  • 정병조 금강대 총장정병조 금강대 총장
▲ 정병조 금강대 총장
▲ 정병조 금강대 총장
흔히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말한다. 훈고학적으로 말하면 자(慈)는 베푼다는 뜻이고 비(悲)는 고통과 슬픔을 덜어준다는 의미다. 이 뜻을 합쳐서 자비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석가를 비롯한 불교의 위인들은 이 자비실천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법구경』에는 다음과 같은 법어가 있다. '미움은 미움에 의해 사라지지 않는다. 오직 용서만이 미움을 없앨 수 있는 첩경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온통 적개심으로 무장한 듯하다. 야당과 여당은 서로를 나무라고, 경영자와 노동자들은 상대방 잘못만을 탓하고, 보수와 개혁은 서로를 못마땅해 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반드시 무너뜨리고야 말리라는 결연한 의지만이 난무한다. 사바세계에서의 갈등이야 피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이 문제다.

이 대결의 구도 속에서 건전한 중도세력이 기반을 잃는 것도 우려가 아닐 수 없다. '건강한 국가'라는 것은 이 중도세력이 튼튼한 나라를 가리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사회든지 특권층과 절대빈곤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이 둘의 완충지역이 중도세력이기 때문에 중도가 실종하면 곧 파탄을 면키 어려운 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중도세력은 종교가 차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교는 시대적 양심이며 건전한 가치관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혹 종교 가운데는 격렬한 투쟁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들은 언제나 불의에 저항하는 정의세력임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혁명이나 계급투쟁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내면의 완성이며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사회참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가장 건전한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전쟁·종교재판 등의 극단적인 역사경험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달라이라마같은 경우가 전형적인 예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탄압을 피해서 60여년 전에 인도의 다람샬라로 망명하였다. 지금도 그곳에는 티베트인들이 망명정부를 세우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고독한 투쟁 속에서 그는 단 한번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더 큰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를 두 번 만났는데, 매우 솔직하고 꾸밈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법문의 내용도 쉽고 간결했다. 일본속담에 '사십 넘은 사나이의 인상은 그 사람의 이력서다'라는 말이 있다. 교묘한 언사로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그 얼굴모습과 표정까지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인상은 중요한 법이다. 텔레비전 뉴스에 나쁜 일 저질렀다고 나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유들유들하고 뻔뻔해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정치인이건 경제인이건 간에 어느정도 '고독의 그림자'가 느껴져야 한다. 삶을 관조할 줄 아는 지혜, 남을 배려하는 사회야말로 훌륭한 국민이오, 나라다. 달라이라마의 법문은 결코 어렵거나 요령부득의 언사가 아니었다. 더듬거리는 영어가 오히려 진실성있게 다가선다. 그는 자비를 강조하였는데 그 해석이 귀담아들을만 했다. “불교의 요체는 자비입니다. 그러나 남에게 베푼다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베풀지는 못하지만, 해치지 않을 수는 있지 않습니까?”

불교는 선악의 극단적인 가치관을 갖지 않는다. 대칭적으로 선과 악을 대비시켜야 할 경우에도 언제나 선과 불선(善)이라고 표현한다. 또 그 중도의 가치관을 무기(無記)라고 설정한다. 요컨대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니라는 뜻이다.

자비는 적극적으로 남을 위해 헌신한다는 뜻이지만, 그렇게는 못할망정 해치거나 불행을 주는 일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해는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대립과 원망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제 우리 모두는 용서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을 원한으로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업중생이라는 평범한 인식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붉은 안경을 쓰면 세상은 온통 붉지만 푸른 안경은 전혀 다른 세계다. 앞서 말한 붉고, 푸른 안경은 바로 우리들의 편견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그 편견의 안경을 벗어던져야 한다. 자비를 흔히 소극적인 평화의식이라고 보기 쉽지만, 사실 자비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평화수단이다. 모든 국민이 자비를 품고 살수는 없지만, 자비로운 마음씨를 가진 이가 더 많은 사회가 바로 극락정토라고 생각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