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윤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
심리학자 오웬즈는 갈등을 “견해의 차이와 견해들의 비양립성에 있다”고 했다. '부러진 화살'도 동료 교수가 출제한 입시 문제의 오류를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할 것인가?' 아니면 '동료의 실수를 덮어줄 것인가?'의 두 가지 견해의 차이에서 갈등이 생성되고 있다. 여기에 '학교 명예가 떨어지니 조용히 넘기자!'는 집단이기주의가 개입되자 양립 가능한 갈등의 임계점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하면 2009년 한국의 갈등지수는 0.71로 OECD 평균(0.44)보다 훨씬 높다. OECD 국가 중에서 4번째로 높으며, 미국과 일본의 1.7배, 독일의 2배다. 노사갈등은 생산손실과 고용위축을 낳았고, 새만금과 원자력사업 등 대형국책사업의 갈등은 예산낭비를 초래했다.
이렇게 사회갈등으로 지불되는 비용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약 30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사회갈등지수가 10% 하락하면 1인당 GDP가 7.1% 증가하고, 한국의 갈등지수가 OECD 평균인 0.44로 완화될 경우 1인당 GDP는 5000달러 이상 증가하게 돼 1인당 GDP 2만5000달러 시대로 껑충 뛰어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도 사회통합위원회 출범식에서 “갈등을 극복하면 더 큰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고 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지난해 “2030년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갈등해소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심지어 미국 경제학자 맨커 올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이 패전 후유증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에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각종 이익단체가 와해됐기 때문”이라는 역설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는 갈등에서 상처만 입을 것이 아니라 순기능도 찾아야 한다. 헤겔은 갈등도 변증법적으로 해석해 “기존의 틀과 제도에 저항하는 세력이 나오면 이 두 세력의 충돌이 다시 하나로 뭉쳐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게 되므로 갈등은 미래를 향한 몸부림”이라고 했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관리능력'에 있다. 하버드대학의 대니 로드릭 교수는 “갈등관리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경우 사회갈등수준은 완화될 수 있다”고 했다. 갈등관리시스템이란 바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해 공공정책을 산출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와 규범, 그리고 정책운용 시 공정성과 일관성 등을 발휘하는 갈등조정자로서의 정부의 능력을 말한다.
원자력사업의 갈등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1980년대 말부터는 원자력사업의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돼 안면도, 굴업도, 부안사태로 이어지는 님비가 있었다면, 2000년대 중반부터는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지역 간 유치경쟁이 치열했던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 : 제발 내 앞마당으로 오세요.)가 나타났다. 그러다 최근에는 다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폭풍으로 또 다시 님비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원자력사업 등 공공사업을 둘러 싼 갈등관리를 위해서는 갈등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한 문제해결의 틀'과 의사결정권을 가진 갈등주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이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관련된 복잡한 갈등구조를 보인다면 갈등해결전문가의 지원을 통해 문제해결프로세스를 디자인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정교한 갈등관리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갈등은 더 이상 미봉책을 써서도 외면하려 해서도 안 된다. '부러진 화살에서처럼 국민 저항권적 차원의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개인이나 '재판은 끝났지만 그 부끄러움은 계속 안고 살아가는' 법관이 나와서도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갈등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국가와 사회와 조직은 잘 마련된 갈등관리시스템으로, 개인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마주선다면 우리는 갈등의 생성과 해소를 통한 선순환적 사회구조를 확보하게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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