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인의 대전도시공사 사장 |
필자는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 때문에 고향인 대전을 떠나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국 여러도시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 5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의 웬만한 도시들도 대부분 수백년의 유서(由緖)를 자랑하며 나름의 전통과 독특한 지역색을 갖고 있었다. 전국의 대도시 가운데 불과 100년 정도에 불과한 상대적으로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는 대전이 유일한 듯하다. 도시의 역사가 짧다보니 이렇다하고 내세울 변변한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사시간에 대전이라는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아니어서 도시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만한 특징이 없는 게 사실이다.
경부선철도 부설이후 100년 가까이 들어왔던 교통의 요충이란 표현만으로 대전을 나타내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내세워 과학의 도시로 불리기도 하고 정부대전청사가 입주했으니 행정의 도시로 불리기도 하는데 부분적으로는 타당하지만 대전의 정체성과 특징이 모두 담겨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전을 어느 한가지 기능에 묶어둘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신탄진에 살았던 필자는 기차로 대전역까지 와서 문화동에 있던 대학 캠퍼스를 걸어서 다녔는데 내가 걸었던 길 주변에 있던 건물 상당수가 아직도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수십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하기도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대전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대전과 충남도청 사이에만 존재했던 도심기능이 이제는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도시를 에워쌌던 군부대와 공장부지가 시민의 주거공간으로 변모해 중심부와 변두리의 구분이 희미해졌다.
대전이 경험해 온 이같은 변화가 지금까지는 2륜구동 방식이었다면 세종시와 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새로운 동력원이 더해지면서 4륜구동으로 가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물론 차분한 준비와 시민의 단합된 의지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변화와 역동성이야 말로 대전과 대전사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한다. 100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가 부끄럽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도시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짧은 시간 동안 이룬 성과가 자랑스러운 것이고 지나간 역사책에는 등장하지 않는 지명이지만 앞으로의 역사에서 대전이 한국의 중심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전의 가능성은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10년 기준으로 대전의 인구증가율은 4.1%인데 전국 특·광역시 평균증가율인 0.6%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인구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은 대전이 젊은 도시이며 발전의 여지가 많다는 반증이다.
대전의 도로에는 58만대의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매일 40명이 태어나고 27쌍의 남녀가 결혼한다. 하루에 230만의 석유를 소비하고 1270t의 쓰레기를 배출한다. 150만 시민이 숨가쁘게 만들어 가는 대전의 단면이다.
지난날을 추억하며 자기만족을 느끼기에 대전은 아직 젊고 변화의 속도 역시 너무 빠르다. 우리는 대전에 살면서도 대전의 역동성과 성장가능성을 과소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연히 남의 떡을 시샘하며 정작 내가 맛있는 떡을 빚을 생각은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고향을 떠났다가 30여 년만에 다시 대전에 살게 된 나같은 사람에게 12개의 빼어난 봉우리가 도시의 둘레를 이어주고 3개의 큰 하천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과거와 변함없는 자연을 즐기는 것도 큰 행복이지만 이와 더불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역동적인 대전의 모습을 보며 내가 그 성장에 작은 벽돌하나를 보태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대전에 사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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