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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문제의 뿌리는 미술관이라는 명사의 '참을 수(밖에) 없는' 부적절함에 있다. 일단 미술이라는 말 자체부터 문제다. '아름다움(美)+기술(術)'이라는 말. 얼마나 조악하고 초라한가! 문자·구두언어를 다루는 문학을 미문(美文)이라고 부르거나 청각언어를 다루는 음악을 미음(美音)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유독 시각언어를 다루는 예술만 미술이라고 부르니 이건 정말 심각한 오류다. 요즘은 미술이라는 말 대신에 시각예술이라는 단어를 쓰곤 하는데, 일거에 바꿀 수 없으니 길게 볼 일이다. 미술관이라는 명사는 이중으로 왜곡된 언어다. 미술관은 '미술의 집'이 아니라 '미술을 다루는 박물관'이다. '미술+관'과 '미술+박물관'의 차이는 매우 크다. 미술관이라는 말은 사진관이나 이발관, 체육관처럼 특정 고유명사 뒤에 '집 관(官)' 자를 붙여서 쓰는 경우와는 다르다. 사전에는 '미술관은 미술박물관의 준말'이라고 나온다. 미술관이라는 말은 그것이 '일종의 박물관(a kind of museum)'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하는 고약한 명사다.
박물관이라는 한자 번역어는 영어 뮤지엄(museum)을 옮긴 말이다. 뮤지움은 원래 '예술의 신들이 사는 신전'을 뜻하는 말로서 뮤즈(muse)와 엄(um)의 조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사이(mousai)는 예술을 관장하는 아홉 여신들이다. 그리스어로는 무사이온(mousaion), 라틴어로는 무사에움(musaeum), 영어로는 뮤지엄(museum)이다. 요컨대 뮤지엄의 어원은 '예술의 신전'으로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인류사적인 유물을 다루는 집이다.
박물관이라는 번역어는 직역이 아닌 의역이다. 박물(博物)이란 '여러 사물에 대하여 두루 많이 아는 것, 여러 사물 그 자체 또는 그에 관해 참고할만한 물건'을 뜻한다. 영어권에서는 이 박물을 'wide knowledge'라고 불러 넓은 지식을 이른다. 따라서 박물관이라는 번역어는 '박물(博物)+관(官)'이라는 구조 속에 '뮤즈(muse)+엄(um)'의 직역, '예술의 집'이 아닌, 그 집의 기능과 역할의 의역으로 '넓은 지식을 뒷받침하는 물건들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을 담았다.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의 협력기관인 국제박물관협의회(약칭 아이콤, ICOM)가 1974년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채택한 국제박물관협의회 헌장 제3조를 보자. '박물관은 인류와 그 환경에 관한 물적 증거에 관한 학습, 교육 및 오락을 목적으로 수집, 보존, 연구, 의사전달, 전시를 통하여 사회와 그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항구적인 비영리 기관이다.' 박물관은 인류의 지식과 노동의 결과물을 공공의 것으로 나누고 후대에 물려주는 보물창고이자, 연구기관이며, 전시장이자, 교육기관이다.
미술관은 시각예술과 시각문화 관련 자료들을 잘 모아서 갈고 닦아 널리 나누고 후대에 물려주는 일을 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의 이상과 제도를 탄탄하게 다져야 미술관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미술관은 시각예술 분야를 다루는 박물관'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미술관이라는 명사를 시각예술박물관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일이다. 21세기 문화사회의 길목에서 시각예술박물관의 큰 걸음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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