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만약 여포가 한족(漢族)이었으면 끝까지 위대한 무신으로 남았을 것이다. 동탁, 가후는 오랑캐 땅에 살긴 했지만 같은 한족인 작가가 배려하느라고 했다. 삼국지의 '불편한 진실'이다.
그럼에도 삼국지가 좋다. 그 '명랑'함이 좋다. 삼국지 논쟁의 획을 그은 리중톈 교수는 조조를 활달하고 명랑하다고 표현한다. 고이데 후미이코는 손권에 대해 명랑하고 도량이 넓다고 했다. 각색이 심한 고우영 삼국지의 인기 비결은 묘사의 명랑발칙함이다. 밝을 명(明), 밝을 랑(朗). 명랑하다. '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하다.'
'명랑'이란 말마디를 잊고 산 지 오래됐다. 위선적인 근엄함, 위장된 천박함 속에서 명랑소설, 명랑만화 읽는 재미와 결별한 시대의 불운이다. 아이들이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 '플롯시' 시리즈, '외동딸 엘리자베스' 시리즈에 열광할 때만 해도 학교가 이렇게 광포하지는 않았다. 사회가 냄비처럼 끓지는 않았다.
황국신민화 성격은 있었다. 지금의 '건전'과 비슷한 명랑이다.
해방 이후도 지배 코드는 한동안 '명랑'이었다. 6·25 직후 허정 서울시장은 첫 기자회견에서 “명랑하고 행복한 수도 서울 재건”의 포부를 다졌다. 당시 신문사들은 국민 명랑화 운동을 제창했고 중도일보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60년대 후반에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은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고자 했다.
노랫말에도 '명랑한 서울 거리 사랑하노라~'처럼 '명랑'이 들어간다. '명랑화 운동'의 시도로 '즐거운 인생은 노래로부터' 표어 아래 노래자랑도 행해졌다. 라디오에선 아침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나눕시다 명랑하게 1년 365일~' 이 흘러넘쳤다. '명랑'이란 잡지에, 심지어 할머니의 진통제도 '명랑'이었다. 복용설명서의 문구다. “명랑을 잡수시면 신기하게도 머리가 명랑해집니다.”
신기한 일이었다. 70년대 초반에는 노란 스마일 배지를 달고 다녔다. 대전 시내버스에 요즘 크게 붙인 스마일 모양의 배지였다. 명랑한 학교와 사회와 부부생활, '건전'에 '반(反)퇴폐', '반우울'이 가미된 명랑이 넘쳐났다. 국가가 비명랑의 명랑을 장려했다. 명랑 운동은 죽지 않는다. 진보신당 공약 자료에는 '노동시간 단축, 칼퇴근 명랑사회'도 있다. 충북의 어느 청소년 단체 회장은 취임하면서 “명랑사회 건설”을 다짐한다.
하이퍼미디어 시대의 언어문화에서 명랑은 또 다르다. '건전하고 명랑한 기풍 조성' 따위의 엄숙한 관제 명랑이 아닌, 활발하고 유쾌한 명랑은 이 토크(talk)가 지향하는 톤이다.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신일숙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멋진 대사처럼 <문화토크>도 조금은 예측불허다. 확실한 것은 조조, 동탁, 여포처럼 첫 등장만 근사하지는 않겠다는 것.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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