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개미의 70%는 논다

[이정원]개미의 70%는 논다

위험 닥쳤을 때 군락보호 위해 동원될 예비인력 구성원 다양성 확보가 조직 안정성의 주요 조건

  • 승인 2012-01-31 13:35
  • 신문게재 2012-02-01 12면
  • 이정원 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이사이정원 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이사
[백북스와 함께 읽는 책]일하지 않는 개미-하세가와 에이스케 저

▲ 이정원 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이사
▲ 이정원 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이사
저자 하세가와 에이스케는 사회성 곤충 분야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다. 주로 진사회성생물, 특히 개미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일하지 않는 개미로만 집단을 만들어도 곧 일하는 개미가 나타난다'는 연구 성과는 대중적으로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대중과학서와 경영서, 두 가지 관점에서 읽힌다.

대중과학서로서 이 책은 사회성 생물의 진화 전략, 특히 개미의 진화 전략에 대한 간결하고 명확한 설명을 제공한다. 또한 사회성 생물에 관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학적 질문과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론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덤으로 저자가 과학을 바라보는 철학, 과학 이론의 '진화'에 대한 견해도 엿볼 수 있다.

경영서로서 이 책은 효율적인 조직, 지속 가능한 조직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의 영문 제목을 직역하면 '지속 가능한 조직을 위해 꼭 필요한 게으른 일꾼들'이다. 아마 저자나 출판사는 이 책이 경영서로 읽히기를 의도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 책이 과학서로 분류되지 않고 경영서나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개미의 진화 전략에 어떠한 비밀이 숨어 있기에 인간 조직 원리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일하지 않는 일개미들이 어떻게 진화했는가?'하는 문제다. 이 질문은 얼핏 보면 모순이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흔히 개미는 부지런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70% 정도의 개미가 아무 일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의 일을 하지 않는 개미도 있다고 한다. 개미 사회에 도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일하지 않는 개미들'은 대체 왜 존재하는 것일까? 단지 게으른 것일까? 무임승차한 개미들일까?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 것일까?

▲ 하세가와 에이스케 저
▲ 하세가와 에이스케 저
저자는 이 대목에서 '반응 역치의 다양성'라는 중요한 개념을 설명한다. 개미나 꿀벌 같은 사회성 동물들은 협력 작업이 필요한 어떤 사건 상황에 반응하는 민감도에 있어서 개체마다 차이가 있는데, 그 민감도가 반응 역치다. 예를 들어, 벌집의 온도가 올라가면 꿀벌들이 날갯짓으로 온도를 낮추는데, 날갯짓을 시작하는 온도는 꿀벌 개체마다 다르다. 각 개체들의 반응 역치는 유전적으로 결정되기에 한 마리의 여왕벌이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하고 여러 번 번식을 하면 반응 역치가 서로 다른 개체들로 군락을 구성할 수 있다.

반응 역치의 다양성은 변화하는 외부 상황에 효율적인 대처를 위한 전략으로 작용한다. 앞의 예에서 벌집의 온도가 약간 올라가기 시작하면 적은 수의 꿀벌이 날갯짓을 시작할 것이며, 온도가 계속 올라가면 더 많은 꿀벌이 날갯짓에 동원될 것이다. 꿀벌 개체들이 가진 반응 역치 다양성의 폭이 큰 군락은 온도 변화에 더욱 섬세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일하지 않는 개미가 존재한다는 것은 반응 역치의 다양성이 크다는 말과 같다. 일하지 않는 개미들은 군락을 위협하는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동원될 것이다. 반응 역치의 다양성은 군락의 존속을 지탱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실험 상황에서 '모두 함께 일하는 집단'보다 '일하지 않는 개체가 있는 집단'이 평균적으로 더 오래 존속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기서 우리는 '개미와 배짱이' 이후에 개미로부터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조직 내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좋은 전략 중 하나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협력함에 있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가진 능력과 역할이 다양할수록 그 사회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획일화된 사회보다 더욱 안정적이다.

이정원 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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