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란]우공(牛公)의 수난시대

  • 오피니언
  • 청풍명월

[황미란]우공(牛公)의 수난시대

[직선곡선]황미란 편집팀 차장

  • 승인 2012-01-30 16:06
  • 신문게재 2012-01-31 21면
  • 황미란 편집팀 차장황미란 편집팀 차장
▲ 황미란 편집팀 차장
▲ 황미란 편집팀 차장
얼마 전 설을 맞아 고향집에 가던 길, 소 두 마리를 태운 트럭과 마주했다. 불편한 모습으로 철창에 묶여 어디론가 실려가는 어미와 새끼소. 트럭 바닥이 미끄러운지, 달리는 차의 속도가 버거워서인지 자꾸만 넘어질듯 휘청거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미는 새끼를 부축이라도 하듯 제 몸을 밀착시켜 보호하려 애썼다. 사람의 자식사랑과 다르지 않은 모성(母性)! 안쓰러운 마음에 한참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예부터 소는 우리민족에게 특별한 존재다. 일손 바쁜 농사철 주인 대신 이웃집 품앗이도 나가고, 읍내 장날이면 자가용 노릇 톡톡히 해냈으며, 대도시로 유학간 자식 등록금 밑천이 되기도 했다. 집안의 큰 일꾼이자 재산목록 1호였고 또 한 식구이기도 했다.

춘삼월 봄비에 '워워', '이럇'을 반복하며 촉촉해진 밭을 쟁기질하던 할아버지, 제 덩치보다 큰 황소 앞세우고 꼴 베러가던 동네오빠들 모습이 눈에 선한데….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소는 더 이상 집안의 일꾼, 가족이 아닌 '식육용 가축'으로 밖에 대접받지 못한다. 촌로와 늙은 소의 '30년 우정'은 영화속의 일이 된지 오래다. 엎친 데 덮친 격, 악몽같던 구제역으로 생목숨 11만 마리가 땅속에 묻힌지 1년도 채 안 돼 그 귀하던 몸값은 '개값보다 못한' 신세가 됐다. 심지어 비싼 사료값에 굶어죽는 일까지 발생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벼랑끝 축산농가를 살리겠다며 내놓은 정부의 소값 안정대책. 이런저런 정책들 중 눈에 띄는 '송아지 요리 개발'. 태어난지 6개월 가량의 어린 송아지를 이용해 소비를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하지만 이미 유렵과 미국에서는 송아지 고기를 먹지 말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고 한다. 좀더 연한 고기를 얻기 위해 발조차 뻗지 못할 좁은 상자에 쇠사슬로 묶어 근육생성을 막고 4~5개월만에 도축하는 잔혹한 사육방식 때문이다. 어쩌면 정부의 뜻대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공략, 소비촉진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 여러나라의 변화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또 만에 하나 돼지값 폭락땐 애저찜(어미돼지 태중의 새끼나 갓 태어난 새끼를 통째 쪄낸 우리나라 토속음식) 시식회라도 벌일 심산이 아니라면 말이다.

필자는 동물보호가도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평생을 농촌을 지키며 살고 있는 농부의 딸로서 배춧값 오르면 중국산 절임배추 수입하고, 폭락하면 갈아엎는 임기응변식 대책이 아닌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농업대책을 바란다.

다행히 설 전후로 산지 소값이 조금이나마 올랐다고 한다. 정부의 소값 대책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명절 소비증가로 인한 반짝 현상인지 아직 가늠하긴 이르지만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앞으로 정부대책이 신통한 효력을 거둬 '소', '배추'가 우리 농촌의 희망이 되길 기대해 본다.

황미란·편집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