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미란 편집팀 차장 |
예부터 소는 우리민족에게 특별한 존재다. 일손 바쁜 농사철 주인 대신 이웃집 품앗이도 나가고, 읍내 장날이면 자가용 노릇 톡톡히 해냈으며, 대도시로 유학간 자식 등록금 밑천이 되기도 했다. 집안의 큰 일꾼이자 재산목록 1호였고 또 한 식구이기도 했다.
춘삼월 봄비에 '워워', '이럇'을 반복하며 촉촉해진 밭을 쟁기질하던 할아버지, 제 덩치보다 큰 황소 앞세우고 꼴 베러가던 동네오빠들 모습이 눈에 선한데….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 소는 더 이상 집안의 일꾼, 가족이 아닌 '식육용 가축'으로 밖에 대접받지 못한다. 촌로와 늙은 소의 '30년 우정'은 영화속의 일이 된지 오래다. 엎친 데 덮친 격, 악몽같던 구제역으로 생목숨 11만 마리가 땅속에 묻힌지 1년도 채 안 돼 그 귀하던 몸값은 '개값보다 못한' 신세가 됐다. 심지어 비싼 사료값에 굶어죽는 일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이미 유렵과 미국에서는 송아지 고기를 먹지 말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고 한다. 좀더 연한 고기를 얻기 위해 발조차 뻗지 못할 좁은 상자에 쇠사슬로 묶어 근육생성을 막고 4~5개월만에 도축하는 잔혹한 사육방식 때문이다. 어쩌면 정부의 뜻대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공략, 소비촉진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 여러나라의 변화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또 만에 하나 돼지값 폭락땐 애저찜(어미돼지 태중의 새끼나 갓 태어난 새끼를 통째 쪄낸 우리나라 토속음식) 시식회라도 벌일 심산이 아니라면 말이다.
필자는 동물보호가도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평생을 농촌을 지키며 살고 있는 농부의 딸로서 배춧값 오르면 중국산 절임배추 수입하고, 폭락하면 갈아엎는 임기응변식 대책이 아닌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농업대책을 바란다.
다행히 설 전후로 산지 소값이 조금이나마 올랐다고 한다. 정부의 소값 대책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명절 소비증가로 인한 반짝 현상인지 아직 가늠하긴 이르지만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앞으로 정부대책이 신통한 효력을 거둬 '소', '배추'가 우리 농촌의 희망이 되길 기대해 본다.
황미란·편집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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