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헌 변호사 |
경주 교동에는 최부자로 유명한 준과 윤 두 형제분의 집안이 있다. 경주 최부잣집은 12대 만석꾼, 10대 진사 집안으로 유명한데, 이 집안이 이렇게 오랫동안 부를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가훈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 첫 번째 가훈은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정쟁에 휘말리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는 재산은 만석 이상은 지니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적정 수준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지나가는 객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것으로 괜한 적을 만들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네 번째는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재산을 많이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착취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섯 번째로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만 입으라는 것인데, 평소 근검절약하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으로 서로 상부상조하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부잣집에는 이와 같은 여섯가지 가훈 외에도 자신을 지키는 여섯가지 육연이 있어 평소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했다고 한다. 이러한 가훈의 실천을 통해 경주 최부잣집은 12대 약 300년간 만석꾼으로 부를 유지하면서도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대기업들은 과연 어떠한가? 최근의 통계를 보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의 기업프렌들리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효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이 살아나면 중소기업과 국민들에게도 그 효과가 넘쳐난다는 낙수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투자고용계수 또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즉 대기업은 성장하는데 그에 따른 고용효과는 점점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거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의 영역이었던 분야에까지 대기업의 진출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최근의 기사를 보면 재벌 2, 3세들이 빵이나 물티슈, 심지어 순대나 떡볶이와 같은 분식사업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한마디로 벼룩의 간까지 빼먹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결과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5년 동안 약 1.6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더불어 기업총수나 2, 3세들의 범죄는 줄지 않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회사경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과오가 아니라 주로 주가조작이나 회삿돈 횡령, 배임 등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경제발전과는 무관한 개인의 치부를 위해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후 엄히 처벌할 경우 국가경제에 큰 악영향이 있으니 선처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고 사법부 또한 관용을 베풀고 있으니 이는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도 반한다 할 수 있다.
경주 최부잣집은 대대로 못 가진 사람을 착취하지 말고 사방 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300여년간 엄청난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상도를 걸으면서도 충분히 대대로 부를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존경까지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의 대기업들도 기부문화의 확산을 위해 노력한다거나 나름대로 고용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평의 가게를 얻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평생을 바친 자영업자들의 일터까지 빼앗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라는 최부자 집안의 가훈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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