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선 (사)풀뿌리사람들 상임이사 |
그러나 요즘 대학입시 제도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200여 개의 4년제 대학이 올해 내놓은 수시전형의 유형은 무려 2500개가 넘는다. 학생도 학부모도 담임도 알 수가 없는 입시 제도를 뚫고 대학에 진학하는 일은 규칙도 모르면서 경기장에 선 선수와 같은 일이다. 코끼리 뒷다리 잡기 식의 대학 입시를 위해 일부에서는 컨설팅 학원에 500만원씩 하는 고액을 주고 맞춤형 수시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현행 대학 입시 제도는 2008년부터 시작된 수능등급제, 내신등급제, 대학별 자율결정이라는 틀로 만들어졌다. 대학들은 입학사정관제 확대, 적성검사 진행, 다양한 외국어 성적 요구 전형, 경력이나 활동에 대한 포트폴리오 요구 전형 등 나름대로 우수한 인재 선발을 위해 다양한 전형 방법을 마련해 냈다.
문제는 현재의 수시 전형은 상당한 기간에 수시전략에 맞추어 스펙관리를 한 경우라야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상당 기간의 스펙관리를 위한 학부모의 적극적인 개입과 상당한 사교육비의 부담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교과내신, 비교과내신, 수능, 논술, 면접, 수시1, 수시2와 같이 대학입시가 복잡해질수록 돈과 시간이 많은 부모를 둔 자녀들에게 유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교육만큼은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수시전형도료도 엄청나다. 대체로 7만원에서 10만원 사이에서 책정되는 전형료는 수시 전형제한이 없고 같은 학교에 중복해서 두 번의 수시에 응시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많아 적게는 3번에서 10번까지 지원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5번으로 제한한다고 하지만 수시 경쟁률이 40대 1을 넘는 곳이 많아 부담은 적지 않다. 2010년 기준으로 고려대는 47억원, 성균관대는 46억원을 전형료로 벌었다고 하니 수시 전형료로 대학 건물 하나가 올라간다는 말이 헛말은 아니다.
대학입시 제도를 16차례나 바꾸었지만 바꿀 때마다 복잡해지는 제도로 인해 학생들의 부담과 사교육비는 늘어만 갔다. 그러나 입시제도의 변화가 대학경쟁력을 높였는가 하면 그 결과는 신통치 않다. 대학의 경제사회부합도가 세계 최저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개선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입시제도의 변화가 대학경쟁력과는 상관관계가 없다. 15세의 교육경쟁력을 보여주는 국제학업성취도(PISA)의 결과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대학입시와 대학교육과정은 신통치 못하다. '대학의 자율성과 변별력 강화'를 앞세우면서 '입시 공정성과 사교육비 절감'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아무리 대학입시 제도를 바꾸어도 과당경쟁은 막을 수는 없다. 세계적인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체 일자리 중 5% 수준에 불과한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 전문직 이외에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 사회적 환경을 바꾸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과당경쟁 구조를 당장 바꾸지 못한다면 입시 제도를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하게 하는 것이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를 막는 길이다. 복잡하고 부담스럽고 부자에게 유리한 대학입시제도를 단순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입시제도로 바꾸는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 수시를 줄이고 정시를 늘리며 수능과 내신으로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는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적어도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아니라 실력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또 교육을 통해 계층 간의 신분 상승의 기회를 주는 입시제도의 개선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