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외직에 나가서는 대장군 깃발을 세우고 관인(官印)을 허리에 두르며 노랫소리와 음악소리를 벌려놓고 어여쁜 아가씨를 끼고 놀며,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높은 수레를 타고 비단 옷을 입고서 대궐 문으로 들어가 묘당(廟堂)에 앉아 사방을 다스릴 계책을 들으니 이를 열복(熱福)이라 한다. 깊은 산속에 살며 거친 옷에 짚신 신고 맑은 못가에서 발씻으며 고송에 기대 휘파람을 불고, 집에는 좋은 거문고와 고경(古磬)을 놓아두고 바둑판 하나와 책 한 다락을 갖추어두며, 마당에는 백학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꽃과 나무 및 수명을 늘리고 기운을 북돋우는 약초를 심는다. 이따금 산승이나 우객(羽客)과 서로 왕래하며 소요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세월이 가고 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조야(朝野)의 치란에 대해서도 듣지 않는다. 이를 청복(淸福)이라 한다.」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열복이지만 청복은 마음속에서 갖춰지는 것임을 다산은 말하고 있다.
『서경·홍범구주』에서는 행복의 표준을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오복(五福)이라 하는 바, 일왈 수(壽)요 이왈 부(富)요 삼왈 강령(康)이요 사왈 유호덕(攸好德)이요 오왈 고종명(考終命)이다. 사람은 우선 살아 있어야만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오복 중에 첫 번째로 수명을 우선삼은 것이다. 그러나 비록 하늘이 내려주신 명대로 살아도 삶을 풍요롭게 누려야 하므로 부(富)를 두 번째 두었다. 강(康)은 몸이 편안한 것이요 령()은 마음이 편안한 것이니 강령은 근심과 어려움이 없어서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한 것이다. 오래 살고 부유해도 심신(心身)이 편안하지 못하면 복이라 할 수 없으므로 세 번째에 강령을 두었다. 넷째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는 것이다. 덕을 좋아하지 못하면 늙어도 제대로 죽지 못하고 부유해도 어질지 못하고 위선으로 마음만 고되게 할 뿐이니 귀(貴)하다 말할 수 없다. 실은 덕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복록은 자연히 이르는 것이니 유호덕은 복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이 고종명이다. 고(考)는 이루는(成) 뜻이니 고종명은 하느님이 나에게 내려주신 명을 바르게 이룬 것이다. 맹자는 고종명한 자를 '정명자(正命者)'라 했고 그렇지 못한 자를 '비정명자(非正命者)'라 했다. 사람 수명이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하늘이 내려주신 명을 바르게 지켜서 객사하지 않고 자식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 여한 없이 가는 것이 고종명이리라.
그런데 이 글에서 명심할 것이 있다. 홍범에서는 '오복의 근원이 오사(五事)에 있다' 한다. 오사는 모(貌)언(言)시(視)청(聽)사(思)다. 오행의 원리로 설명한 것이요 모두가 눈·귀·입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 들인데, 이 모두는 마음을 공경(恭敬)히 해서 펼쳐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용모는 공손해야 하고[貌曰恭] 말은 조리가 있어야 하며[言曰從] 보는 것은 밝아야 하고[視曰明] 듣는 것은 분명 해야 하고[聽曰聰] 생각은 지혜로워야 한다[思曰睿]'고 가르치고 있다. 모두가 다 원하는 오복이지만 마음을 맑고 깨끗이 하는 가운데서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먼저 내 마음 다스릴 생각은 하지 않고 탐욕에만 젖어있는 우리들에게 홍범의 오복은 선약(仙藥)이 될 만한 가르침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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