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때문에'와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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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때문에'와 '덕분에'

[목요세평]김영호 배재대 총장

  • 승인 2012-01-18 14:44
  • 신문게재 2012-01-19 20면
  • 김영호 배재대 총장김영호 배재대 총장
▲ 김영호 배재대 총장
▲ 김영호 배재대 총장
인생사가 모두 칼 같은 인과율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삶에서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일에 대해 인과율을 적용하길 좋아한다. 지금 나에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과거의 어떠한 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인연생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나 아닌 다른 존재와의 거리가 서로의 긴밀한 작용에 의해 생기고 또 사라진다는 인연설은 사실 일상과 그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그 사건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따지게 된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문제를 사건 자체에서 보다는 그 사건이 일어난 동기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 인과율을 드러내는 말 중에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인 '때문에'와 '덕분에'일 것이다. 두 단어 모두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배후를 과거에서 찾아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같지만, 각각의 단어가 가진 과거의 일에 대한 태도는 사뭇 다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고 있는 지금, 이 두 단어가 함유하고 있는 뜻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과거의 행동은 현재의 어느 지점에 와서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믿고 또 그로 인해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덕분에'보다는 '때문에'에 더 의존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나의 의지나 행동의 외부에서 일어난 불가항력의 어떠한 일들이 지금의 자신을 결정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부정적일뿐더러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지름길이 된다. 일의 선후관계를 따지는 데 있어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고, 또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스스로 기만하다보면 문제의 근원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비슷한 단어 사이에 그 사람이 어떠한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지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는 '때문에'라는 단어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삶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단순해 보이는 두 단어 사이에는 개인이 나 아닌 다른 존재, 즉 타인을 받아들이는 전반적인 규범체계가 숨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떠한 존재와 존재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관계가 생기게 되고 그 관계는 때때로 이해득실의 측면에 머무르게 된다. '때문에'라는 단어는 그 이해득실의 극단에 선 말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를 이해득실의 측면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존경한다면, '덕분에'라는 말이 필요할 것이다. 당신이 가진 덕(德)으로 인해 내가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관용과 이해의 자세가 '덕분에'라는 작은 단어에 담겨있다. 내가 지금 이 소중한 지면을 빌려 글을 쓰는 이유가 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 '덕분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새해가 밝았다. 세상을 영위하는 우리가 감사를 표할 사람이나 감사를 표해야 할 존재는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가족과 친지, 친구들은 물론이고 직장상사와 동료, 하다못해 자주 들리는 식당의 주인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감사한 존재다. 그들 '덕분에' 지금의 나는 별 탈 없이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비단 사람만이 고마운 것은 아니다. 매일 아침 밝아오는 해와 불어오는 바람, 가끔 내리는 비와 눈, 흔들리는 나무와 이름 모를 풀꽃까지, 온통 그들의 덕이 충만해 내가 이렇게 호흡하며,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추상적인 관념으로서의 감사가 아닌 온 몸으로 느끼고 또 감복하는 자세 속에 자연스러운 '덕분에'가 있다. '때문에'라고 말해버리기는 너무나 쉽다. 하지만 '덕분에'라고 공을 돌리는 것에는 참으로 깊은 마음씀씀이와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인과율과 맞닥뜨린다. 그것이 참이든 혹은 허상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일 것이다. 인과율을 따질 때마다 누구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고 또한 슬픈 일이다. '때문에'대신 '덕분에'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일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12년 임진년을 맞아 여느 때처럼 많은 이들은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금연을 하는 것도 좋고, 평소 가지 못했던 여행을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도서목록을 정하고 독서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삶을 대하는 자세부터, '때문에'보다는 '덕분에'로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새해를 열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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