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수 대전충남 민언련 공동대표, 두리한의원장 |
여럿이 어울려 평화극장 가는 길은 신이 났다. 왕우가 연기한 돌아온 외팔이는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며 내 얼을 빼놓았고, 영화가 끝난 뒤 동무가 한턱 낸 짜장면은 세상에 이런 음식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하지만 중국집을 나서자 쇠잔한 노을이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 이마빡에 잠깐 비치더니 곧바로 어둠이 짙게 깔렸고,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 또 멀어 짜장면은 쉬이 꺼졌다. 불안한 마음에 염통이 졸깃졸깃해졌다가 오금이 저리는 게, 집에 가는 길은 참말이지 무겁고 또 무서웠다. 나 어릴적 평화극장 추억은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평화 둘. 민주통합당 초대 당대표로 한명숙 후보가 당선됐다. 한나라당은 당의 명운을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백지위임한 신세다. 통합진보당은 세 명의 공동대표 중 이정희 대표의 활동이 가장 눈부시다. 이걸 두고 여인천하라 부르기엔 조금 약한가? 아무튼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앤서니 기든스가 말한 바 있다. 누군가는 여성의 시대란 여성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말한다고 꼬집었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잘 되자면 여성의 정치·사회 참여가 좀 더 넓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평화(平和)를 풀면, 골고루(平) 밥(禾)을 나눠 먹는(口)일이다. 밥을 누가 나누나. 마땅히 여성이 할 일이다. 살림을 사는 여자는 자신은 비록 누룽지를 끓여 먹더라도 밖에서 일하는 가장에겐 좀 더 많이 눌러 푸고, 커나가는 아이에겐 고봉으로 밥을 담는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기실 어머니와 누님들의 희생을 발판삼아남정네들의 노고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남정네들이 권력도 잡고 남북 간 군비경쟁도 제법 해보았는데, 내가 보기엔 결과가 썩 신통찮다. 여성들이 한 번 대통령도 하고 정책도 결정하고 법안도 만드는 세상이 왔으면 싶다. 여기서 여성을 꼭 생물학적 성으로만 국한하지 말길. 포용하고 토론하고 양보하고 연대하는 모든 정치인을 나는 여성적 정치인이라고 부르니 말이다. 그렇다면 돈 봉투를 돌리고 거짓말을 일삼고 비서를 방패삼는 그런 자들은 마땅히 남성적인 정치일 것이다. 올해 정치엔 부디 평화가 깃들길.
평화 셋. 요즘 내 관심은 학교폭력 문제에 많이 쏠린다. 다른 어떤 사회적 이슈보다 가슴 아프고 쟁그랍고 끔찍하다. 우리 때 학교 폭력이 주로 교사와 선배들에 의해 권위와 질서의 이름으로 강제됐다면, 지금의 학교폭력은 친구가 친구에게 재수 없다고 두들기고 돈을 뺏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꼭 30년이 지났건만, 공포와 폭력은 되풀이되고 있다. 30년 동안 우리 사회는 대관절 무엇을 얼마나 발전시켰기에, 우리의 자식들이 동무에게 얻어맞아 목을 매고 옥상에서 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우리의 주머니는 1000달러에서 2만 달러로 두둑해졌건만, 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의 마음은 더욱더 완고해지고 외로워 울며 녹슨 쇠처럼 부스러져 가는가.
사회적 문제가 대부분 그렇듯 학교폭력도 여러 가지 원인이 얽히다 불거진 것이리라. 그러니 가해학생을 가두고 생활기록부에 올리고 경찰을 투입해서 풀려고 들지 말자. 지난 세월 동안 그렇게 해서 풀린 문제가 무엇이 있었던가. 공자 가로되, 군자는 조화를 이루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소인은 획일화만 주장한다 했다. 결국 골고루 조화를 이루자는 평화가 학교폭력의 해답일 것이다. 하늘의 영광은 내 소관이 아니지만, 땅 위엔 부디 평화가 봄날의 초목처럼 짙푸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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