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그 중 시중은행은 한때 고졸 출신이 일자리를 휩쓴 대표적인 직장이기도 하다. 그러던 채용 판도가 바뀐 분기점은 1997년 IMF 금융위기였다. 이제 다시 그것을 깨야 할 때다. 대전지역 특성화고의 금융권 입사자가 보험사를 포함해 14명에 불과한 데서 이러한 기조가 요지부동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은행원의 90%를 고졸자가 차지하기도 했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고졸 채용 기피는 고학력 사회 분위기와 경쟁력 강화 명분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고졸 행원이 가능한 업무, 예컨대 창구 텔러행원 공채에 대졸자나 석ㆍ박사를 뽑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모처럼 고졸 채용의 불씨가 살아난 것은 단순히 고졸자 채용 확대 이상의 사회적 의미가 있다. 특히 학력 인플레이션, 학벌 중심 사회 타파라는 점에서다. 고졸 취업이 쉬워질 때 학력 철폐 기조 또한 자리잡는다. 고학력 편중은 여전한 채 보여주기나 생색내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
보도에서 지적된 채용의 서울 편중을 막기 위해서는 본사 중심의 모집 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대졸자가 넘쳐나는데 왜 고졸자를 뽑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바로 그럴수록 지속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다만 대졸자 취업난 해소와 상충되지 않게 정책적인 배려는 필요하다.
지역 금융권부터 대졸 위주의 채용과 인력관리 시스템을 먼저 손질해야 한다고 본다. 학력이 아닌 실력 중심사회를 금융권에서 앞서 만들기를 희망한다. '열린 고용사회' 정책은 물론 정부 독려가 아닌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호응하는 방향이어야 바람직하다.
지금처럼 고학력 실업자가 300만명을 넘나든다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금융선진국인 미국은 창구직원의 80% 이상을 고졸 사원이 지킨다. 고졸 우대 분위기가 생산성이나 경쟁력을 저하시키지 않는다는 본보기다. 금융권 고졸 채용 정착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고졸 채용의 선도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사회적 책임을 갖고, 특성화고 등 고졸과 지방 출신에 대한 인력 채용의 폭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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