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나 누이가 떠 준 털장갑도 눈을 뭉쳐 가지고 놀다 보면 어느새 꽁꽁 얼어붙곤 했다. 꽁꽁 언 장갑 낀 손을 뜨거운 입김으로 호호 불면서 추녀 밑의 고드름을 따서 입에 넣고 아드득 씹어 먹는 맛은 여름에 먹는 아이스케이크에 견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 가곤 했다.
긴긴 겨울밤은 사색의 밤이기도 했지만 특별한 겨울 먹거리를 준비 하곤 했다. 먹을거리가 풍족한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시골의 먹을거리는 그런대로 풍부했다.
아랫목보다는 서늘한 윗목이나 윗방에는 고구마를 담아놓은 큰 가마니가 있어서 언제든지 꺼내다가 깎아 먹거나 구워먹고 쪄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찐 고구마와 함께 먹는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동치미와 국물맛은 그 어느 것과도 비길데가 없었다. 팥죽을 쑤어 밖에 두었다가 먹는 맛도 그만이었다. 마치 요즈음 양갱을 먹는 것과 같았다.
자주 꺼내다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방이나 장광에 보관했지만, 온도에 민감하고 잘 말라서 방에 보관하기 어려운 것들은 텃밭에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어 보관했다. 구덩이 위를 나뭇가지나 짚으로 덮어 빈 공간을 만들고 고구마나 감자, 배추, 무 등 얼거나 마르기 쉬운 것들을 넣고 흙을 덮은 뒤 짚더미를 쌓아서 보관했다.
지금도 배추를 실내에서 보관할 때 신문지에 싸서 보관하는데, 이와 같은 이치이다. 꺼내먹을 때는 구덩이 한쪽에 구멍을 내고 꺼내다 먹곤 했다. 특히 고구마나 감자 등은 겨우내 얼지 않도록 잘 보관하여 다음해에 씨앗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를 씨고구마 또는 씨감자라 해 더욱 소중하게 보관했다.
이 가운데 배추밑동이 있었다. 이 배추밑동은 당근처럼 굵은 배추뿌리를 말하는데, 매우 귀했다. 김장할 때 넓은 배추밭에 배추가 아무리 많아도 깎아 먹을 만큼 굵은 배추밑동은 몇 개가 안 되었다. 그래서 귀한 배추밑동은 마치 보물처럼 여겨졌다. 매콤 달콤하고 아삭아삭한 배추밑동은 그 어느 것에 비길 수 없는 그야말로 한 겨울밤의 별식이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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