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주 부여군농민회 정책실장 |
도대체 지금 축산농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한·미 FTA가 본격화 되면 벌어질 일들이 왜 벌써부터 일어날까? 답은 하나다. 적자 농사이기 때문이다. 사료값은 오르고 고기값은 내리고, 쇠고기 수입은 증가하고 3중고가 이어지니 축산농민들이 살아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축산농가는 자신의 피붙이 같은 소를 굶겨죽이고 거리로 내몰며 헐값에 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마치 1980년대 중반을 다시보고 있는 느낌이다. 80년대 중반 새마을운동본부 전경환(전두환의 동생)이 뉴질랜드산 살아있는 소를 수입하면서 소 값이 똥값이 되자 농민들은 여의도에 소를 풀고 '소 값 개 값'을 외치면서 대규모 시위를 했다.
이른바 '소몰이 투쟁'이 벌어진지 23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축산 농가들은 '소 값 개 값'이라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기막힌 현실이다. 당시 '소몰이 투쟁'때 경찰들은 마을마다 입구를 봉쇄하면서 농가의 여의도 상경을 강압적으로 막아섰고 여성농민들은 이에 항의하여 바늘을 가지고 전경들의 나무 옷 사이를 찌르면서 대열을 뚫고 강경하게 저항했었다.
절박한 심정에 최루탄에 맞서 고춧가루를 뿌려가면서 장터로 향하기도 하고 심지어 나주의 어떤 농민은 군청 앞 나무에 여의도에 가지 못한 소를 메어두고 “농가부채 대신 수입소로 가져가라”고 절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한때 우리나라 대학은 우골탑(牛骨塔)으로 불렸다. '우골탑-상아탑' 이었던 시절 소는 선배들의 빛나는 인생을 안겨준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청년실업이 만연한 88만원 세대의 신세는 어쩌면 축산농가가 당하는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온다.
현재대로라면 자살하거나 파산할 축산 농가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정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소 잃고 외양간도 잃어야 할 절박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도대체 정책이란 것이 있기나 하는 것일까? 물가실명제를 운운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사료값 30%가 올랐고, 육우값은 30%가 내렸다. 축산농가 입장에서 보면 사료 값은 내리고 육우값은 올라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물가정책 입장에서 보면 오른 사료값은 책임지고 떨어진 육우값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과연 소값 폭락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다. 한·미 FTA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축산 농가의 수명은 점점 단축될 것이다. 축산농가 대신 축산기업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23년 전 그랬듯이 축산농가들 소 굶기지 말고, 자살하지 말고 농가부채와 사료값 대신 현물소로 상환하는 일들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농민은 생명을 키우고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생명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임진년이 될 수 있도록 더 이상 농민의 존재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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