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이영 천안쌍정초 교장 |
며칠 전 충남교육청 주관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독서콘서트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독서 동아리 학생들과 동화작가, 교육감과의 대화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달에 책을 몇 권쯤 읽고 있느냐?”는 김종성 교육감의 질문에, 4학년 한 학생은 “100권쯤 읽는다”고 대답했다.
모두 깜짝 놀랐다. 1학년 학생이 3월부터 학교도서관에서 대출해 1000권의 책을 읽었다는 말은 담임교사를 통해 들어온 터였지만 4학년 학생이 한 달 평균 그렇게 많이 읽는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한 사람이 1년에 평균 20권을 채 못 읽는 것에 비하면 대단한 독서량이다.
30여 년 전 시골학교에서 6학년을 담임할 때의 일이다. 유난히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여학생이 있었다. 하루는 교장선생님께 부탁해 학교도서관에 책 좀 사 달라는 것이다. 3학년 때부터 학교 도서관의 책을 틈틈이 읽었다고 한다. 6학년 가을쯤에는 학교에 있는 책을 모두 읽었기 때문에 읽을 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가 가난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읽을 책을 충분히 갖춰 주지 못할 때였다.
지금부터 십수년 전 외환위기 때, 나라 경제는 물론 모두가 어려울 때였다. 학교에 있는 책만 가지고는 학생들의 독서에 대한 갈망을 해결하지 못하던 조그마한 시골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교생 180여 명뿐인 학교에서 큰 일이 벌어졌다. 학생 개인별로 학교를 지정해 대도시의 중·고등학교 학생회에 편지를 썼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선배들로부터 도서 기부를 받은 셈이다. 의외로 호응이 높았다. 6000여 권의 책이 모였을 때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방송국에 필자와 학생대표가 출연해 전국에 생방송으로 방영돼 2만여 권의 책을 확보할 수 있었다. 헌 책도 있었지만 새 책이 더 많았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그 많은 책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학부모들도 서가를 마련해 주는 등 많은 관심과 협조를 해 주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조그만 시골학교에서 책읽기 열풍이 일어났고 학생들은 모두 활기에 찬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교장으로 부임해 학교를 네 번 옮겼다. 부임한 학교마다 학교도서관 정비와 도서 확충 등 독서교육 여건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 전 학교에서는 새로운 학교도서관을 개관해 새 책도 6000권 이상 구입해 짧은 기간에 어느 학교 못지않은 환경을 조성해 책 읽는 학교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전임 학교에서 학교도서관 정비는 물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지역사회 주민과 학부모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개관해 학생과 학부모들 모두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기도 했다.
학교도서관을 정비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해 주면 학생들은 책을 읽는다.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우리 학교 학생들은 평균 100권 이상의 책을 대출해 읽었다. 요즈음 방학에도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우리 학교도서관은 늘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학습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그런데 독서는 이상적인 자기 학습의 능력을 가능케 해 줄뿐만 아니라, 창의력을 키워주는 데 조력해 준다고 본다. 빌 게이츠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하버드대학도 아니고 동네 조그만 도서관이었다”고 말한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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