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배추 이사관? 삼겹살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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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배추 이사관? 삼겹살 서기관?

  • 승인 2012-01-04 14:37
  • 신문게재 2012-01-05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소주 사무관, 삼겹살 서기관, 고등어 부이사관, 배추 이사관 …. 이름과 자리를 걸면 물가가 잡힐까? 이명박 대통령이 3일 물가책임실명제 도입을 거론했고 5일 이를 논의할 예정이다. 어쩐지 'MB물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배추는 농림수산식품부 A 국장, 석유는 지식경제부 B 과장 등으로 이름과 공직을 걸 만큼 고강도 물가 카드를 쓴다는 의지야 좋다. 단 그렇게 두더지 잡듯 해서 잡히느냐엔 물음표가 찍힌다. 물가의 작동 원리나 구조는 간단하지 않다. '삼겹살 1인분 얼마' 하고 밑줄 긋고 가격 통제 하면 되는 '마이크로'한 측면만 있지 않다. 공무원 개인기에 의존한 물가 잡기가 가능했다면 'MB 물가' 품목인 배추가 포기당 1만원대에서 몇백원 대로 롤러코스터 탈 일도 없었다.

그동안도 틈만 나면 물가안정을 공언했다. 물가관계장관회의만 스무 차례나 열었건만 상승률은 4%대였다. 체감 물가는 훨씬 높다. 대전의 물가상승률은 4.5%로 전국 시·도 최고치다. MB 집권 이전 5년 간 물가상승률은 2.2~3.6%였다. 2008년 대비 돼지고기는 42.5%, 사과는 48.5% 올랐다. 배추 66.7%, 무 49.2%처럼 떨어진 품목도 있다. 무값이 4000원으로 뛰자 무를 안 먹는다는 기획재정부 차관의 말을 들은 게 얼마 전이다.

3일 대통령은 말했다. “열린 사회인 만큼 수급 예측을 잘하면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배추, 마늘, 돼지고기 가격 폭등을 막자고 정부가 잔뜩 수입하다 가격 폭락이 된 사례도 있었다. 현실감도 있어야 한다. 가령 화물비용이 10만원인데 2만원만 받으라면 망하라는 얘기다. 물가를 3%대 초반으로 기어코 잡겠다는 신년연설이 실천되길 바라지만 농산품, 공산품 중 일부 오른 품목만 뒤쫓는 대증요법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성의 표시라도 하라며 인하를 종용하거나 설탕값 창구지도 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특히 환율, 금리 등 거시정책 수단을 빼놓으면 팔 비틀기 물가정책이 된다. 시장 원리, 수급 안정을 묵살하고 각 부처의 '힘'으로 쥐어짜면 버티기 작전이나 제품 양을 줄이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 승리를 예상한 팀이 지는 펠레의 저주처럼 엉뚱한 결과가 되기도 한다. 펠레가 월드컵송을 부른 아나스타샤의 가슴을 훔쳐봤더니 그녀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물가정책에도 아무튼 전문가의 저주가 있을 수 있겠다.

미래 예측에 아예 기대지 말라는 것이 랜덤 워크 이론이다. 물가에는 이게 적용될 때가 많다. “지구상에 20달러짜리 배추가 어디 있느냐”는 대통령. 실은 국민이 반문할 말이다. 조기 사무관, 배추 사무관이 있던 전두환 정권 당시 물가상승률은 평균 3.5%였다. 그렇다고 라면값을 100원으로 묶던 제5공화국에 향수를 가져선 안 된다. 어르고 달래고 비틀었음에도 MB 임기 내내 고물가 행진이 꺾이지 않고 있다. '두부 이사관', '생리대 서기관' 하고 담당자를 지정하는 물가실명제가 아마추어리즘으로 흐르면 안 된다.

당연히 정부든 지자체든 물가관리에 매달려야 할 것이지만 지금은 조선시대도 군사독재시대도 아니다. 담당 공무원을 닦달하기보다 거시경제정책을 통한 물가관리에 힘써야 한다. 오늘(5일)로 예정된 비상경제대책회의 긴급 안건에 물가책임실명제를 올릴 모양이다. 현실을 모른다는 말은 안 듣게 민생 현장에 뿌리 못 내리는 물가대책부터 반성하는 게 순서일 듯싶다. 믿었던 상식이 늘 배신을 때리는 이유에 대해 말이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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