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용 대전성룡초 교감 |
1982년 9월에 경기도 안성 방축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후 1년 6개월간 가르친 제자가 보낸 편지다. 아이들에게 사랑과 열정을 쏟았던 만큼 또 서툴러서 상처도 많이 줬던 그런 시기였다.
“선생님, 제가 대전에서 1명만 선발하는 보건교사에 최종합격했어요. 선생님께 제일 먼저 전화하는 거예요.”
정은이가 작년 1월 26일 오전 10시 20분께 했던 전화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통화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할 정도로 필자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특히, 정은이가 가족들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던 필자에게 처음 알린다는 말에 우쭐해졌다. 거짓말이라도 좋았다. 정은이는 대전장동초등학교 다닐 때 테니스 선수로 전국대회까지 참여했던 팔방미인이다. 국군간호사관학교에 다닐 때에는 필자와 종종 만나 테니스를 치기도 했다. 작년 12월 28일 종합감사를 받던 날 정은이의 연락을 받았다. 대위로 제대했다며 2012년 1월 2일부터 대전동광초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근무하게 됐다고 했다.
“선생님, 사흘 전에 복귀했어요. 몸은 완쾌했어요. 조만간 국제선 비행기를 다시 탈것 같아요.” 2011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K 항공 스튜어디스인 미정이의 전화를 받았다. 이미정은 대전성룡초등학교에서 6개월간 가르쳤던 제자다. 1994년 9월 학구 조정으로 782명이 대전성천초등학교로 옮겼는데 미정이와 그때 헤어졌다.
그 후 연락이 없다가 작년 봄, 정기 진료를 받으러 종합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 미정이는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고 있었고, 필자는 그 곁을 지나다가 동시에 “박종용 선생님!”, “혹시, 이미정?”을 외치며 만났다. 필자와 미정이는 15년이 지났건만 서로 이름을 기억했다며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 마냥 기뻐했다. 미정이는 기류 이상으로 비행기가 흔들릴 때 넘어져 고관절을 다쳤다고 했다. 그 후 식사도 같이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 제가 S 전자에 입사했어요. 대학병원 인턴인 서지원, 대학생인 김대호와 찾아뵐게요.” 국내 굴지의 회사에 입사했다는 손재원의 연락을 받았다. 세 명은 대전성룡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단짝이더니 여전히 잘 지낸다.
“선생님의 독서논술 지도 방법을 배우러 왔어요.” 대전학생교육문화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의하는 날, 대전삼천초등학교 사서교사인 안현숙이 찾아왔다. 지금은 폐교되었지만 1984년에 충남 서천 남당초등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다. 두 아이의 엄마라지만, 필자의 눈엔 여전히 그때의 앳된 소녀로 보인다.
“선생님, 아침은 드시고 가셔야지요.”
군대 가는 친구를 위로한다고 장동초등학교 동창 열댓 명에게 거나하게 한턱 낸 김성훈, 새벽 3시쯤 필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더니, 선생님을 어떻게 그냥 보내느냐며 한사코 식당으로 안내한다. 혓바닥이 껄껄해 무슨 밥맛이 있었겠느냐마는 제자의 정성에 연거푸 수저 질을 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이 예쁘다고 한다. 필자에게 제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보배다. 제자들의 소식은 필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게 하고, 제자들과 어우러져 마시는 술은 보약이 되어 지친 몸에 활력소가 된다. 2012년 임진년에도 29년간 여기저기에서 가르친 제자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고 싶다. 제자를 자랑하는 팔불출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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