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섭 한국무역협회 건설추진단장 |
용기와 희망의 상징인 용이 물을 만난 형국이라 매우 길한 해로 여겨졌고 또한 모든 색의 통합인 흑색과 합쳐진 흑룡의 해에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나타난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임진년에 역사적으로 가슴 아픈 큰 사건들이 많았다. 1592년에는 임진왜란이 있었고, 1952년에는 한국전쟁이 치열했던 해이기도 했다. 수많은 징조가 있었음에도 미리 대비하지 못했던 탓에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치욕스러운 변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자였던 하인리히는 다양한 사고를 정밀하게 분석해 1931년 산업재해예방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1대 29대 300 법칙'이라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하인리히의 법칙'이다. 한 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전에 유사한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그 주변에서는 300번의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다는 것이다. 결정적 사고나 실패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나타나는 사소한 징후들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확장되어 재해석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10년간 교통사고 통계를 분석하면 1회의 사망사고가 일어날 때 35~40회 정도의 중경상 사고가 발생했으며 수백 건의 위험한 교통법규 위반사례가 적발되었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등과 같은 대형 참사의 공통점은 수없이 많은 사전 경고가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부실시공과 허술한 관리에 이어 내부직원의 신고와 전문가의 위험 경고마저 연쇄적으로 철저히 무시당하거나 간과되었던 것이 조사 결과 나타났다.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가 중간에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못했던 것은 한번 무시한 경고나 사고를 계속 무시하는 타성에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수조원대의 불법 대출을 저지른 부실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퇴출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아직도 진행형이라는데 그 심각성은 더하다. 서민금융이라는 본연의 임무는 뒷전인 채 저축은행들의 무분별한 부동산개발 대출 증가율은 2005년도에 최고조에 달했으며, 2008년도부터 시작된 부동산경기의 급격한 하락은 대출 연체율 급등으로 나타났고, 여기에 대주주 위법 문제와 금융당국의 부실 감독 등 도덕적 해이까지 이어져 대규모 부실사태가 발생했다. 이처럼 2005년과 2008년에 뚜렷이 나타난 위험 지표는 물론 중간에 나타났던 많은 징후들을 무시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가 대규모 저축은행의 부실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필자는 작년에 특정 부위의 암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다행히 건강검진 때에 조기 발견해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난 7년 동안 필자는 한 병원에서 계속 건강검진을 통해 각종 건강지표에 대해 상담을 정기적으로 받아왔다. 이미 좋지 않은 징조가 몇 년 전부터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를 간과해 결국은 암을 예방하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이다. 다행히 이런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상 징조를 놓치지 않고 암 검진을 시행한 담당의사 덕분에 치명적인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사소한 실수는 항상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때다. 그럴 경우 더 이상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조직의 운명을 좌우할 치명적인 사고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소한 실수라도 드러낼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고 또한 이런 실수나 징후들을 파악해 즉각 대비할 수 있는 위험 관리자가 필요하다. 자기실수를 보고한 직원을 추궁하지 않고, 사소한 이상 징후라도 보고한 직원의 말을 경청하는 관리자가 조직을 구하는 구세주가 될 것이다.
임진년인 올해는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가 동시에 있는 해다. 흑룡의 해에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나타난다고 한다. 민심과 사회 전반에 나타난 사소한 징후도 놓치지 않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정직한 선량들과 진정한 영웅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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