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문제는 개인과 사회, 사사성과 공공성을 잇는 현실적인 접합지점이 무엇이냐에 달려있다. 예술적 소통의 가능성은 전지구적 차원의 보편성으로 열려있기도 하며, 국가단위나 마을단위의 특수성을 가늠하는 소통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보편적일수도 있고 특수할 수도 있다. 전지구와 국가, 또는 마을 단위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간극을 메워주는 개념이 도시와 예술이라는 의제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전이라는 도시와 예술의 관계가 실체적인 의제로 부각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12월 중순에 열린 대전융복합예술주간에 참가했다. 대전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카이스트와 대전시립미술관 등 여러 기관, 단체가 함께 한 이 행사는 서로 다른 영역이 만나는 복합의 예술과 서로 다른 장르가 섞여 하나가 되는 융합의 예술을 지향하는 프로젝트다. 첫 행사로 포럼을 열어서 융복합예술의 가치와 비전을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엑스포과학공의 한빛탑에서는 전시와 공연이 열렸다. 음악과 시각예술과 춤이 결합한 융복합예술 퍼포먼스는 영하의 맹추위를 넘어 '과학예술융복합창조도시'라는 의제를 공론화했다.
한빛탑 전망대에서는 기획전시가 열렸다. 필자가 전시감독으로 참가한 이 전시의 제목은 '한빛 판타지'였다. 엑스포과학공원은 대전의 상징이다. 비록 그것이 시대정신을 직조하고 상상력의 구역을 획정하는 개발주의 프로젝트였다고 할지라도 엑스포과학공원의 판타지는 대전시민들이 공유한 문화적 합의의 씨앗이다. 그 씨앗은 아쉽게도 시민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있다. '한빛 판타지'는 시민들로부터 멀어진 한빛탑을 다시 찾게 함으로써 과학도시대전의 미래 비전을 향한 예술적 실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자했다.
과학도시의 정체성은 대전의 시민사회 속에 뿌리내린 삶의 문화이기보다는 정치적인 슬로건이나 경제적인 지표로서 존재한다. 동쪽의 구대전과 서쪽의 신대전은 차이는 과학도시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동서지간의 문화적 차이는 중심과 주변, 과거와 미래, 부유와 빈곤, 쇄락과 활성화 등 차별적인 이분법을 확대재생산한다. '과학도시대전'이라는 구호는 대외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대내적으로는 동서의 간극을 심화하는 메커니즘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정체성의 분열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문화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과학도시 정체성이 정치적 쟁점이거나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주요동인이라는 점은 기정사실이다. 그것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의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문화정치와 만나야 한다. 문화정치는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민관협치에 의한 우리도시 대전 전체의 몫이다. 예술 영역에서도 과학도시대전이라는 정체성을 예술적 실천과 섞어내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이 '대전특정적인 예술(Daejeon-specific Art)'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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