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국]송구영신(送舊迎新)을 위한 술 한 잔

  • 오피니언
  • 주역과 세상

[이응국]송구영신(送舊迎新)을 위한 술 한 잔

[주역과 세상]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승인 2011-12-28 14:44
  • 신문게재 2011-12-29 21면
  •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어느덧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매년 돌고 도는 세월이요 1년을 마치는 마당에 매듭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옛날 송나라 때의 학자인 서현(徐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찬 등불 깜빡거리고 물시계 더디건만[寒燈耿耿漏遲遲] 송구영신은 어김없구나[送舊迎新了不欺].'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이니 만큼 종(終)과 시(始)를 이으려는 마음이 각별했던 모양이다. 1년의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해를 지킨다'는 의미로 수세(守歲)라 하며 집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밝혀놓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으며 마음을 경건히 했다. 올해와 내년을 이으려는 뜻에서다. 한 해의 묵은 때를 제거한다는 뜻에서 제석(除夕)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깨끗한 마음으로 내년을 맞이하려는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마치는 일이 선하면 새로 시작하는 일도 선한 법이다. 대개 '시종'의 용어를 순환(循環)의 의미로 '종시(終始)'라 표현한다. 종은 단지 끝이 아니요 다시 시작을 이루게 하는 인자(因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종을 귀하게 여겼다. '유종(有終)의 미(美)'를 강조함이 바로 그 뜻이다.

주역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종시로 두려워하라[懼以終始]'했다. 종(終)을 삼가고 시(始)를 삼가는 것, 다름 아닌 역도(易道)를 가리킨 구절이다. 왜 그런가? 천도는 법대로 흘러가지만 인사의 도는 과불급이 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뉘우칠 회(悔)'자를 강조한다. 뉘우침 속에서 바르게 갈 수 있는 길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맹자는 '근심 속에서 사는 길이 나오고[生於憂患] 안락하면 죽음의 길로 들어간다[死於安]'하였다. 주역에서도 '위태로울까 여기는 자는 평안하게 되고[危者使平] 만사를 소홀이 여기는 자는 기울어지게 됨[易者使傾]'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음양의 뜻이요 종시의 상대성을 강조한 말이니 사실은 태극의 원리가 이렇다. 양이 극하면 음이 생하고 음이 극하면 양이 생함이 태극의 원리다. 도대체가 궁함이 없기 때문에 태극의 원리를 '무궁(無窮)'이라 하였다. '궁즉통(窮則通)'의 원리, 본래 천도의 유행이 그러하니 『주역』에서는 '마치면 다시 시작을 두는 것이 하늘의 운행[終則有始天行也]'이라 하였다. 주역이 미제괘(未濟卦)로 마친 것이 또한 이 뜻이다. 세상사가 태극의 원리처럼 무궁하게 순환하므로 기제괘로 끝맺지 않고 미제괘로 종을 삼은 것이다. 그런데 미제괘 맨 끝 구절에 음주(飮酒)를 말했다. '정성을 두고 음주한다면 허물이 없겠지만 머리를 적실 정도로 마신다면 정성을 둠에 바름을 잃을 것이다[上九는 有孚于飮酒ㅣ면 ?咎어니와 濡其首ㅣ면 有孚애 失是하리라. 象曰 飮酒濡首ㅣ 亦知節也ㅣ라]' 연말에 사람들이 송년(送年)을 말하면서 함께 술 마시는 것처럼 주역은 그렇게 표현되어 있다.

한 해를 마치는 자리, 즉 '종즉유시(終則有始)'하는데 술을 필요로 하지만 본래 술 자체에 서로를 통(通)하게 해주는 뜻이 있다. 수작(酬酌)이 주역 속에서 나온 용어인데, 주인이 손에게 헌(獻)하면 손님이 주인에게 올리는 것이 작(酌)이요 주인이 손님에게 다시 잔을 돌리는 것이 수(酬)다. 주역은 미래를 알 수 있는 학문이라 할 수 있으니 내가 신에게 묻는 것을 수(酬)라 한다면 신이 나에게 답하는 것이 작(酌)이다. 제사에 술을 쓰는 것은 물론 남녀의 관계에서도 수작이라 표현하니, 실은 수작은 예(禮)로써 가능한 것이지 지나치면 해가 된다. 술은 예를 갖추고 적절히 마시면 '백약(百藥)의 장(長)'이 되지만 지나치면 광약(狂藥)이 된다. 더 심하면 '망신주(亡身酒)'가 되기도 한다. 술을 또 우물(尤物)이라고도 말한다. '훌륭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이를 빗대서 옛사람들은 미녀를 가리키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여자가 덕이 있으면 세상을 빛내겠지만 덕의(德義)를 갖추지 않으면 오히려 세상을 해치지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술도 우물이기 때문에 제례와 향음례에도 사용되지만 지나치면 오륜을 알지 못하게 되고 성품을 손상하게 된다. 요컨대 술이란 예를 갖춘 가운데라야 선하게 쓰일 수 있는 물건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월요논단] 대전 대기업 유치, 겉도는 헛바퀴
  2. 철도지하화 발표 코앞… 대전 파급력 등 평가 긍정적 기류
  3. 대전 상장기업 64개 넘어...올해도 달린다
  4. 대전시의회 조원휘 "안산산단 9부 능선 넘어"… 불필요한 책임공방 무의미
  5. 대전시, 꿈씨 패밀리로 도시경쟁력 강화한다
  1. [오늘과내일] 역사 속 을사년
  2. 세이브코리아(Save Korea) 국가비상기도회
  3. 2025 대전 사회복지계 신년교례회 개최
  4. 더불어민주당 각급 위원회 발대식 "민주주의 회복과 사회대개혁 앞장"
  5. 세계로 가는 수자원공사 중동이어 아프리카 시장 진출

헤드라인 뉴스


자원봉사·CCTV 확대 ‘졸속’… 학교안전 근본대책 마련을

자원봉사·CCTV 확대 ‘졸속’… 학교안전 근본대책 마련을

대전에서 발생한 초등생 피습 이후 돌봄교실 안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근본적인 학교 안전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전교육청이 사건 이후 대책으로 발표한 자원봉사자 배치로는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 실질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대전본부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대전지부는 17일 오전 각각 대전교육청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청의 근본적 학교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현재 돌봄전담사는 오후 7시까지 혼자서 돌봄교실..

대형마트 휴업 평일전환 시 상권매출 3% 상승… 대전 휴일전환 힘 받나
대형마트 휴업 평일전환 시 상권매출 3% 상승… 대전 휴일전환 힘 받나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이 주말에서 평일로 전환할 경우 인근 상권 평균 매출이 3%대로 상승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답보 상태인 대전 대형마트 평일 휴업 전환이 힘을 받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다만, 이해 당사자인 노동자 등은 반대 의견을 강하게 내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의무 휴업일을 평일보단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 등이 발의되면서 시일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17일 산업연구원의 '대형마트 영업 규제의 변화와 경제적 효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주말 영업은 주변 상권에 평균 3.1% 수준의 매출 상승효과를 나타냈다. 연구원은..

`충청광역연합’ 정부재정 필수… 민주당 충청의원들 법안 발의
'충청광역연합’ 정부재정 필수… 민주당 충청의원들 법안 발의

대전과 세종, 충남·북이 함께 출범한 특별지방자치단체인 '충청광역연합'의 재정 지원 근거를 마련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송재봉 의원(충북 청주청원)이 17일 대표 발의한 지방교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대전과 세종, 충남·북 국회의원들이 대거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개정안의 핵심은 지방교부세법 제2조 제2호에 두 개 이상의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설치할 수 있는 '특별지방자치단체'를 추가해 충청광역연합도 지방교부세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내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특별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인도 점령한 이륜차와 가게 홍보판 인도 점령한 이륜차와 가게 홍보판

  • 봄마중 나온 나들이객 봄마중 나온 나들이객

  • ‘우리 동아리로 오세요’ ‘우리 동아리로 오세요’

  • 하늘로 떠난 하늘이…‘오열 속 발인’ 하늘로 떠난 하늘이…‘오열 속 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