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원] 새까만 겨울밤, 별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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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원] 새까만 겨울밤, 별꽃처럼

[중도마당}민병원 대전현충원장

  • 승인 2011-12-26 14:17
  • 신문게재 2011-12-27 20면
  • 민병원 대전현충원장민병원 대전현충원장
삭풍에 잎사귀를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새까만 겨울밤에 별들이 꽃을 피웠습니다. 메마른 가지를 손으로 흔들면 우수수 별들이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그 별들이 대낮같이 비추는 곳에는 키 작은 묘비들이 그리운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고개 숙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출생 1997년 5월 6일, 사망 2005년 7월 19일. 묘비의 주인은 만 8살 어린 아이로 부모에게 한창 사랑받을 꽃다운 나이입니다. 아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최연소자이기도 합니다. 그 옆에는 11살 아이도 잠들어 있습니다.

작년 12월 27일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 차량을 발견하고 사고자 구조 작업 중 뒤따라오던 차량에 치여 의로운 죽음을 맞이했던 황지영·금나래 의사자가 안장되었습니다. 요즘 시대 흐름상 기성세대들이 남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못 본 척 지나가는 것이 다반사인데 젊은 여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고자를 구조하다 희생된 것은 우리사회의 귀감이 되기 때문에 의사자로 선정되었고 이곳에 잠들게 되었습니다.

올해 12월 7일, 자꾸만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의사상자묘역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벌써 8년째 고 전재규 의사자를 기억하며 동료와 선·후배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여 자리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고 전재규 의사자는 1976년생으로 2003년 남극세종과학기지로 귀환하던 중 동료대원들을 구조하다 사망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이 된다'는 것은 '그 모두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영원히 타오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의사상자 묘역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의로운 일을 행하다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신 분들이 안장되는 곳으로 현재 38위가 안장돼 있습니다.

그 옆에는 순직공무원묘역이 나란히 있습니다. 가랑비가 눈물처럼 흘러내리던 며칠 전, 젊은 순직소방관 두 분의 안장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상여 버스의 차문이 열리자 어머니의 애끓는 통곡소리가 조용하던 묘역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막내야, 내가 왔다. 엄마가 왔다. '엄마'라고 불러야지, 네가 왜 여기 와 있냐? 막내야~막내야.” 마치 친동생을 잃은 듯 보는 이의 가슴 속에도 차가운 겨울비가 소리 없이 내렸습니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고인들의 유해가 담긴 유골함이 차가운 땅속에 놓여지고 흙으로 채워지는 순간, 어머니와 아내는 땅을 치며 오열했습니다. 4살배기 쌍둥이들은 그저 웃고만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서 크리스마스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젊은 아내는 이제 남편의 생일상이 아닌 제사상을 차려야합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의 마지막 기억은 영정사진 속 막내아들의 모습입니다.

생의 마지막 이별인 '죽음'처럼 가슴 아픈 말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 지구의 구석구석을 모두 돌아다녀도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절망'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가슴 속에 선명한 사진으로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영원히 살아 있는 거라고 믿습니다. 이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을 향한 추모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사자나 순직소방관처럼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숭고한 희생'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주변 이웃을 향한 별꽃 같은 '작은 나눔'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보다 타인을, 국가를 더 사랑했던 분들을 추운 겨울 밤 따스한 촛불로 기억하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사랑의 씨앗을 나누면서 따뜻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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