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그래서 밋밋하다. 정착지에 대한 공통된 이름은 무게감에 품격도 갖춰야 한다. 자음을 따서 지은 늘빛로, 보늬로, 새싹로, 큰배움로, 채움로, 풀잎로는 경쾌하지만 유치원 교실에 온 듯 너무 투명하다. 세종시는 이념과 헌법정신이 오롯이 필 수도는 아니더라도 천도에 버금가는 기틀은 다져야 할 것이다. 반쪽 행정도시지만 과천처럼 30년 만에 옮겨갈 도시가 아니라면 영속성도 지녀야 한다.
따라서 만약 세종시에서 구현할 한글주권이 있다면 한자어 없애기의 편협함이 아닌 한자도 '우리 것'화하는 포용력에서 찾는 편이 더 맞다. 우리가 우리 것의 허상에 치우쳐 우물쭈물 뺄셈만 거듭하는 사이에 중화주의로 무장한 중국은 고구려와 아리랑에 이어 허튼 한글공정까지 시도하고 있다. 지명을 ㄱ, ㄴ, ㄷ 순에 따라 코드언어(code language)처럼 만드는 순간, 개성과 고유성, 표현성, 그리고 역사성은 사라진다.
이것이 고유성만 있어도 되는 슬기, 보람 등 인명과 다른 점이다. 옹녀 서방 갈듯이 함부로 못 바꾸는 것 또한 지명이다. 대전 '관평테크노동→관평동' 환원 과정에서 본 보편성과 통일성, 아파트값 때문에 바꾼 둔산의 동이름에서 사라진 고착성과 보수성 측면도 함께 짚어봐야 한다. 그 다음은 적합성이다. 불탄터, 웃시암거리, 도깨비탕, 빼리, 통묏돌 등 기존 지명을 써도 될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땅이름은 토착민의 삶의 반영이어야 한다. 경상도 가면 무말랭이 김치, 전라도는 고추김치, 충청도에는 총각무 김치 냄새가 있는 것처럼 지명에는 지역성이 스며 있다. 뒤늦게 세종시에 편입된 부용면의 디린들, 선말나루, 뱃밭, 옷샘, 삼버들, 사슴배는 그 나름의 유래와 사연을 간직한다. 갈대가 많으면 가루개라 부르고 노호(湖)로 적었다. 한자의 지위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획일성이 이질감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70%가 넘는 한자어가 우리말이라는 인식을 갖는다고 세종시 주체성이 다치지는 않는다. 2000년 이상 한자를 쓴 나라에서 한밭만 우리말이고 대전은 그럼 중국말이나 일본말인가. 공주, 연기, 부용을 우리글로 적으면 우리말이다. 라틴어는 그리스어를 통해, 서양의 언어는 라틴어로 인해, 우리말은 한자를 받아들여 더 풍요로워졌다.
혼을 강조하다 체(體)를 잃는 일이 없길 바란다. 세종시 작명도 그렇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자'라 하지 않고 '훈민정음'이라 했다. 대전을 예로 든다면 벌말, 들말, 둔지미, 새여울이 태평, 변동, 둔산, 신탄보다 자랑스러울지언정 자연스럽진 않다. 한글도시를 만든답시고 역사성을 무시한다면 문화와 행정을 담기에 버거워진다. 용역을 마쳤고 여론조사를 거쳤지만 '세종='한글'의 교조적인 틀에 갇히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세종시가 한글도시라는 짐을 져야 하는가. 한글창제 정신은 한자 폐기가 아니고 글 모르는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김 아니던가. 연기군, 공주시 장기·반포·의당면, 청원군 부용면의 정체성이 언어적 감성(linguistic sensitivity)에만 경도되면 오명과 악명을 낳는다. 만원권 지폐를 꺼내 '뿌리 깊은 나무…'가 적힌 세종대왕 초상화를 보라. 세종시 지명부터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지금 바로 세워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