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남]박찬호, 정성기, 마이클 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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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남]박찬호, 정성기, 마이클 샌델

[중도시평]권은남 체육팀장

  • 승인 2011-12-15 14:11
  • 신문게재 2011-12-16 21면
  • 권은남 체육팀장권은남 체육팀장
▲ 권은남 체육팀장
▲ 권은남 체육팀장
박찬호가 돌아왔다. 1994년 메이저리그에 진출, 아시아 투수 최다 124승을 달성하며 '코리안 특급'이라 불리던 박찬호는 이변이 없는 한 내년시즌 한화이글스의 유니폼을 입고 고향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야구팬이든 아니든 박찬호의 복귀는 반가운 일이다. IMF로 모든 국민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 22.9~23.5㎝ 밖에 안 되는 공 하나로 국민을 한데 묶으며, IMF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자긍심을 심어줬다. 야구팬들은 박찬호의 국내복귀를 '영웅의 귀환'이라며 반색하고 있다.

박찬호가 18년 만에 국내로 돌아오는 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본 오릭스에서 방출되고서 마지막 야구인생을 국내에서 마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1999년 이전 해외 진출 선수가 국내에 복귀할 경우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야 한다'는 야구규약 105조 제3항이 걸림돌이 됐다. 이 규정을 적용한다면 박찬호는 내년 8월 있는 신인드래프트를 거쳐, 2014년 시즌에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박찬호는 1년을 기다려야 국내 마운드로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는 지난 13일 국위를 선양한 박찬호가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고 내년 시즌 국내 프로야구에서 뛸 수 있도록 하는 특별규정, 이른바 박찬호 특별법을 승인했다.

국내복귀에 성공한 박찬호는 자신의 꿈을 이뤄 기쁘기도 하겠지만, 부담감도 클 것이다. 박찬호의 국내복귀를 위한 특별법을 만든 KBO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김성근 전 SK감독은 '원리원칙에서 벗어난 법을 만들면 문제가 커진다. KBO가 이리저리 법을 바꾸는 건 난센스다'라는 요지의 말로 KBO의 일관성 없는 결정을 꼬집었다.

박찬호의 국내복귀를 보면서 떠오른 선수가 있다. 제9구단인 엔씨다이노스의 투수 정성기(32)다. '정성기가 누군데?' 대부분 정성기 선수를 모른다. 정성기를 아는 사람은 분명 골수 야구팬일 것이다.

동의대를 졸업한 뒤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 더블A 등에서 뛰었지만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하고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국내 무대에 서지 못했다.

'해외 프로야구에서 활동한 선수는 귀국 후 2년간 선수로 뛸 수 없다'는 한국프로야구 규약으로 프로 문조차 두드려보지도 못했다. 개인훈련을 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지난 9월, 제9구단인 엔씨 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공개선발)에 참가, 20대 선수들과 경쟁 끝에 입단테스트에 통과했다. 2년여 동안 '무적(無籍)' 신세였던 정성기는 트라이아웃 전날에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입원 권유를 뿌리치고, '죽어도 테스트를 받아야겠다'는 절실한 생각으로 테스트에 참가해 꿈을 이뤘다.

박찬호와 정성기의 국내 복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박찬호는 '특별법 제정'으로, 무명에 가까운 정성기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를 통해 마운드에 오른다는 점이 대조를 보인다.

김성근 전 SK감독의 말처럼 기준과 원칙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면 세상은 참으로 불공정하다.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정게임'이라고 하지만 기준과 원칙이 흔들린다면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만 통하게 되고 말 것이다.

박찬호와 정성기를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는 공정한가라는 생각이다. 국위를 선양한 사람은 특별하게 대우해도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잘못됐으면 고쳐야 하고 옳다면 지켜야 하는 것이 기준과 원칙이다.

올해 국내 독서계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가진 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없는 자는 살기 위해 각기 다른 주장을 펴며 극단으로 치닫는다. 장차관 내정자들은 매번 병역미필,부동산투기, 위장전입으로 국민에게 피로감만 주고, 기준과 원칙을 만드는 기관 중 하나인 국회는 정당의 이해타산에 따라 몸싸움만 한다.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 사회이고, 정의로운 사회인지, 올해가 가기 전 잠시라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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