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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수 건양대 총장 |
면접이나 논술 등 최후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마지막 순간까지의 공부보다는 난마처럼 얽혀있는 각 대학의 입시전형을 분석해 잘 골라잡는 이른바 '선택의 기술'을 좇느라 수능 발표 이후부터 원서접수까지 3, 4주를 허송(?)한다. 그러다가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적성이나 장래 희망보다는 받은 점수에 따라 대학의 학과를 선택하고 마는 일들을 자주 보아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입학부터 이렇게 되니까 학교에 들어온 후에도 전공에 애착을 갖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몇 년을 보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과(轉科)도 해보고 편입도 해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찾고, 남학생들은 군입대를 일종의 도피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학년이 오른다 해도 원래 적성이 맞지 않는 전공에 흥미가 더해질 수 없고, 그러니 성적 또한 좋아질 리가 없다.
이같은 현상은 우선 학생 본인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지만 대학의 운영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져온다. 첫째는 타교 편입이나 자퇴 등 중도 탈락률을 높여 재학률을 낮추게 된다. 두 번째는 취업률의 저하를 가져온다. 이들 두 지표는 정부에서 대학을 평가할 때 가장 우선시 하는 것들이다.
건양대학교에서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지난해 초 17개 학과를 대상으로 '동기유발 학기'라는 것을 시험적으로 해보았다. 정식으로 개강해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4주 동안 다양한 특강 프로그램 참여, 전공설명 시간, 선배와의 대화, 미래직장체험 등을 집중적으로 운영해 자신이 선택한 전공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마지막 주에 있은 동기유발학기에서의 느낌과 배운 내용들을 각자 정리해 발표하는 경진대회에 참석한 신입생들의 모습은 4주 전과는 전혀 딴판 이었다. 넘치는 자신감, 전공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타오르는 열정은 온 캠퍼스를 의욕의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구었다. 교직원들이 상당히 힘들었고 재정도 많이 투입되었지만 정말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입학 초기에 많던 학생들의 탈락률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자기 전공에 애착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 학생들은 4년후 취업률도 월등히 높을 것이라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또한 동기유발학기 참여 학생들의 성적을 계속 추적해 예년의 학생들과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등도 면밀하게 분석해 볼 것이다.
그에 힘입어 올해는 40여 개 전체 학과에서 동기유발학기를 실시하기로 하고 준비 중이다. 학생들의 대학 및 학과의 선택이 전공에 대한 뚜렷한 소신없이 이뤄지고 있는 한, 학기 시작 전에 이같이 다잡아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문제는 선택으로 돌아간다. 대학의 전공을 선택할 때 학생의 적성과 장래 희망을 잘 고려하고 거기에 미래의 사회발전 트렌드를 감안해 먼저 전공을 선택하고, 다음에 성적에 맞는 대학을 선택해 지망한다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물론 학생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 학부모와 교사의 충고와 조언이 절대적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생이 어려서부터 다양한 체험을 갖도록 유도해 자연스레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 교사는 과거의 진학사례를 참작해 학생의 전공선택과 대학선택에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의 사회발전 트렌드다. 사회의 변화가 극심한 만큼 각 전공의 부침(浮沈)도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4~5년 전 최고의 인기를 끌던 학과가 요즘은 아주 시들어진 예도 흔히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대학의 전공선택은 적어도 10년 앞은 내다보아야 한다. 상담자에게 수능성적표를 내밀고 그 점수로 아무데나 갈 수 있는 곳을 찍어달라고 해서 결정할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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