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그런데 대나무는 풀일까 나무일까? 강인하고도 단단한 목질로 보면 나무일 것 같은데 잎 모양이나 자라는 속도를 보면 풀과 같다. 그래서인지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에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나무인지 풀인지 애매하다는 뜻이다.
『설문해자』에는 '겨울에도 사는 풀[冬生艸也]'이라며 풀로 정의했다. 그러나 죽(竹)자를 '풀초(艸)'자의 거꾸로 놓은 모습으로 썼다. 풀은 풀인데 자라는 과정을 보니 풀이 아닌 나무더라는 얘기다. 대나무도 암컷과 수컷이 있다.
뿌리로부터 올라와 곁가지가 난 곳까지 마디가 하나면 수컷이고 둘이면 암컷이다. 성품이 곧기 때문에 양일음이(陽一陰二:−--))의 천지기운을 그대로 담은 것 같다. 옛말에 '정송오죽(正松五竹)'이라 했는데 이는 소나무는 정월에 옮기고 대나무는 오월에 옮긴다는 뜻이다. 대개 대나무 옮겨 심는 날[本命日]을 옛 사람들은 음력 5월 13일로 정하고 함부로 옮겨 심지 않았다. '죽취일(竹醉日)' 혹은 '죽미일(竹迷日)'이라 한 바, 성질곧고 지조있는 대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잘 자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별칭 삼았을 것이다. 이 날은 술 취한 날이므로 어미 대는 새끼 대를 떼어내도 아픈 줄을 모르고 새끼 대도 어미 곁을 떠나는 슬픔을 모를 것이며, 자신이 옮겨간 줄도 모르고 낯선 곳에서도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바람의 뜻이지만 실은 대나무의 품격을 높이려는 배려에서다. 그런데 하필 5월 13일로 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산림경제에는 진일(辰日)을 죽취일로 삼으라 하였다. 생각건대 진(辰)은 용을 가리킨다. 용은 동방 목기(木氣)의 정화(精華)로 생긴 동물이니 비늘달린 동물종류중의 영장(靈長)물이다. 풀에서 나무로 화한 대나무, 길쭉한 모습의 대나무가 바로 용의 덕과 모습을 닮았기 때문에 진일로 삼았을 것이다. 그래서 죽취일을 용생일(龍生日)이라고도 부른다.
흔히 대나무는 꽃이 피면 죽는단다. 꽃피는 시기는 대개 태어난지 60년으로 잡는다. 조릿대[笠竹]는 5년 만에 개화결실한다지만 오죽(烏竹)이나 반죽(斑竹) 같은 것은 60년을 주기로 꽃이 핀다. 60은 천도가 순환하는 주기다.
그래서 간지(干支)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 60갑자다. 주역에서도 60번째에 절괘(節卦)를 놓았다. 천지의 순환과 더불어 여합부절(如合符節)하게 생을 마감하는 절조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옛날 당나라 백거이[天]는 『양죽기(養竹記)』에서 대나무의 네 가지 덕을 말했다.
“대나무는 어진 이와 같다. 무엇 때문인가? 대나무 뿌리는 견고하다[竹本固] 견고함으로써 덕을 심으니 군자는 뿌리를 보고서 잘 뽑혀지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대나무 성질은 곧다[竹性直] 곧음으로써 몸을 세우니 군자가 그 성질을 보면 중립(中立)해서 기대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대나무 심지는 비었다[竹心空] 비움으로써 도를 체득하니 군자는 그 심지를 보고서 마음을 비워 받아들일 것을 생각하고, 대나무 마디는 곧다[竹節貞] 곧음으로써 뜻을 세우니 군자는 그 마디를 보고서 이름과 행실을 다듬어서 평탄함과 험함을 일치할 것을 생각한다.”
이같이 덕있고 믿음있는 나무이기에 봉황은 대나무 열매[竹實]를 먹고 산다 한다. 산중에 자라는 대나무를 '신우(神祐)대'라고도 부르니 거짓이 없고 믿음이 깃든 나무이므로 사람들을 점치는 도구로 사용하고 부절(符節)로도 사용했으며, 올곧은 나무이므로 여자들은 대나무로 비녀[笄]를 삼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집 주위에 대나무를 심어놓고 하루라도 '이분'이 없으면 살맛나지 않는다 해서 '차군(此君)'이라 이름 붙였고, 절도를 갖춘 군자라 해서 '포절군(抱節君)', 속이 비고 둥글다 해서 원통거사(圓通居士), 성품이 곧다 해서 직형(直兄)등 다양한 이름을 붙이며 칭송해왔다.
초목들이 잎지고 자취 감추는 이 때 홀로 푸르른 듯 서있는 대나무의 청아한 모습이 더욱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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