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가 설치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밑그림이 지난달 25일 나왔다. 2017년까지 5조1700억원이 투입되는 과학벨트에 핵심시설이 들어설 거점지구는 대전 신동지구(170만㎡)와 둔곡지구(약 200만㎡) 등 모두 370만㎡(약 110만평)에 달한다. 신동지구에는 5000억원이 투입될 거대 과학시설인 중이온가속기가 들어간다. 둔곡지구에는 기초과학연구원이 입주한다. 이들 두 주요시설의 면적은 약 160만㎡(48만평)로 전체 거점지구의 절반에 가깝다. 50개 연구단(약 3000명)을 꾸리는 기초과학연구원 건물은 2015년, 가속기는 2017년에 완성된다. 여기에 R&D 시설이나 제조기업 등 산업 관련 시설이 약 70만㎡(21만평) 규모를 차지한다. 주거단지 시설은 30만㎡(9만평) 터에 약 4300가구가 들어선다.
▲정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아야'=과학벨트가 모델로 삼고 있는 80개의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대학이나 기업에서 할 수 없는 대형 연구, 모험적 연구,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한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시작한 실험적인 연구가 대학에서 수용되면 연구소는 발전적으로 해체된다. 수십년 동안 유지돼 온 이런 다이내믹스가 세계 최고의 연구소를 만든 것이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모토는 '통찰이 응용에 선행해야만 한다(Insight must precede application)'는 플랑크의 경구다. 이 경구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과학벨트에서 정치적 수사를 걷어내고 기초과학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작업의 첫걸음이라는 점이다.
과학벨트 기초과학연구원의 운영체제는 과학자들의 자율적 활동을 보장하되 지역에 산재한 연구단을 과학적, 소프트웨어적으로 강력하게 통합하고 수월성 기준을 공통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목소리다. 또한 막스플랑크가 세계적 연구소의 수월성을 지켜나가는 운영체제에 대한 철처한 분석도 필요하다는 시각도 높다. 기초과학연구원의 자율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연구단의 과학자들이 스스로 과학적 이슈를 결정해 나가는 시스템이 정착되는 것도 과학벨트의 성공을 가름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지적했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은 취임 이후 “2017년까지 총 50개 연구단을 단계적으로 구성, 연구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우수한 연구자들이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지난 1일과 2일 양일간 연기군에서 열린 '중이온가속기(KoRIA) 이용 과학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마이클 스미스 에프립 이용자 대표는 “에프립은 초기에 가속기 건설 예산만 배정되고, 사용자를 위한 체계적 연구비 지원이 전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며 “대형 연구사업의 성공을 위해 정부와 지역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의 자율성', '연구기관의 독립성'=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정책 & 대외관계 책임자 베르톨트 나이체르트(Berthold Neizert) 박사는 독일의 과학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를 '연구의 자율성'과 '연구기관의 독립성'이라고 말한다. 이는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연구기관으로는 최다 노벨상 수상자(17명)를 배출한 배경이기도 하다.
나이체르트 박사는 “우리 연구소는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지만 연구원에게 강의나 교육의 의무가 없고 연구주제 선정도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독립성은 세계 과학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지만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간섭을 받지 않았다. 철저히 독립된 연구기관으로서 연구주제를 연구자 개인들이 선정,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나이체르트 박사는 “정부는 미래를 위한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독립성은 독일 사회의 기초과학에 대한 높은 인식이 바탕이 된다. 독일은 헌법 5조3항에 과학의 자유를 명기할 만큼 연구활동의 자율성이 보장돼 있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에 대한 대우 역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그는 “독일은 경기불황이라도 연구개발(R&D) 분야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을 절대 줄이지 않는다”며 “최근 금융위기 때도 향후 5년간 R&D 분야 연구비를 매년 5%씩 늘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 일본 이화학연구소 모습. |
기간연구소 산하에는 화학생물, 신소재, 녹색물질, 광학 등 4개 연구부서와 37개의 독립 실험그룹, 9개의 별도 연구조직이 있다.
기간연구소는 연구자들에게 이런 연구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실험그룹이 연구의 '씨앗'을 내놓으면 이 중 '열매'가 될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연구부서로 올려 보내 집중 육성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화학연구소 연구체계는 크게 3개의 테마로 구분돼 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선진화 연구(Advanced Science)'와 일본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분야를 연구하는 '전략적 연구(Strategic Research)'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 해주는 '연구 인프라(Research Infrastructure)'로 구성되어 있다.
또 이화학연구소에는 각각 선진화 연구에 4개, 전략적 연구에 8개, 연구 인프라에 5개씩 세부적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들은 각각 공조와 지원 체계를 이뤄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도 이화학연구소처럼 본원, 캠퍼스, 연구단 또 이를 뒷받침해줄 기능지구의 긴밀한 관계가 과학벨트 성공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우 오수카 이화학연구소 국제협력실장은 일본내 5개 지역과 해외 10개 연구소 등을 유기적 관계로 관리하는 비결에 대해, “자유로운 발상에서 키워진 연구자들이 다른 쪽에 가서 리더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 사람들의 연구성과가 쌓여서 순환적 구조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 CERN 건물 안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자들의 모습. |
이화학연구소는 일본 내 5개 지역과 해외 10개 연구소가 분산된 형태로 항문연구자만 3700여명이다. 막스플랑크연구소는 2만5000여 명에 달하는 과학자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40% 정도인 1만명이 외국인이다.
전 세계 60여 개국, 1만여 명의 과학자들은 직간접적으로 CERN과 연관된 연구를 하고 있다.
과학벨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 연구자들이 올 수 있는 연구몰입 환경이 뒷받침돼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좋은 과학을 할 수 있게 해주면 자연스럽게 우수한 과학자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 CERN 전경. |
최종인(한밭대 교수) 대덕벤처협회 정책연구소장은 “과학벨트 핵심은 바로 국제수준의 과학연구와 비즈니스 인력에 있을 것”이라며 “기초과학연구에서 본다면 크게 신진 연구인력과 연구리더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이어 “이를 위해서는 신진연구자들의 모집과 선발, 지원이 중요하다”며 “창의적 과학자들은 재능의 강점을 조기발견,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집중해 창조적 도약을 이뤘다”며 안정적인 연구환경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지난해 1월 22일 롤프 디터 호이어(Rolf-Dieter Heuer) CERN 사무총장은 대덕특구 핵융합연구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과학벨트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가 '국제'”라며 “가속기와 같은 거대 기초과학 연구와 극한연구는 매우 복잡하고 많은 인재를 필요로 해, 한 나라가 모든 것을 진행하기 힘들기 때문에 국제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배문숙 기자 moons@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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