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겨울 날씨가 포근하여 강물이 잘 얼지 않으면 날씨가 추워져서 얼음이 두껍게 잘 얼게 해 달라고 신께 비는 기한제(祈寒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 때 겨울철 찬바람을 잘 맞아들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석빙고의 안쪽 벽과 천장의 돌들은 겨울철 찬바람의 차가운 냉기를 머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얼음을 채울 때 석빙고 안의 더운 공기들은 천장의 환기구멍을 통해 빠져나가게 된다. 얼음을 다 채우고 나면 다시 그 위에 왕겨와 볏짚을 채우고 덮어서 단열 효과를 최대화 시켰다. 그러므로 석빙고 내부는 거의 온도변화가 없게 되어 얼음이 효과적으로 잘 보관되었다. 요즈음도 얼음을 신문지나 천으로 싸서 놓으면 장시간 녹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는 일은 신라시대부터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직을 두어 행하여 왔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빙고(氷庫)라는 관직을 두어 겨울에 얼음을 저장하고 다음 해 봄에 빙고를 열어 얼음이 제대로 보관되고 있는 지 살펴 본 뒤에 규정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이를 반빙(頒氷)이라고 한다.
반빙은 나라의 제사, 임금님 수라간, 문무백관 등에 나누어 주었는데 주로 제사에 쓰이도록 나누어 주었다. 특별한 경우에는 병약한 노인이나 환자 등에게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절차가 『장빙등록』에 1636년(인조14) 6월부터 1754년(영조30) 12월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장빙기술과 반빙슬기에서 우리 겨레의 과학슬기와 백성사랑을 찾아 볼 수 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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