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직장에서는 일과 능력이 나이보다 더 중요하고, 사회에서는 인격이나 도덕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대학에서는 나이보다 학문이나 합리적 사고와 같은 대학 본연의 가치가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그 조직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대학가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선후배 서열화 현상은 거의 고착화된 상태에 이른 것 같다. 선배는 하늘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집안이나 마을의 어른 또는 선생님이나 교수에게 써야 할 극존칭 어법을 선배에게 쓰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따르고 있는 나이를 중심으로 한 선후배관은 일관성마저 결여된 셈이다.
이런 현상은 80년대 대학생 입영훈련이 시작된 뒤에 심화된 것 같다. 80년대는 특히 대학사회가 민주화 운동으로 홍역을 치르던 때다. 얄궂게도 80년대의 대학생들은 군사문화를 배격하던 그들 스스로가 군사문화에 중독되고도 깨닫지 못했으며, 민주화를 염원하는 그들 스스로가 비민주적 관행을 답습하고도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신입생 환영회가 신고식으로 바뀐 것도 이 무렵이다. 심지어 학생회장을 옹립한다는 말까지 있었다.
어쨌든, 지나치게 나이를 내세우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는 재고해야 하고 또 고쳐야 한다. 흔히 이런 관행이 유교사상의 영향이라고 보기도 한다. 오륜(五倫) 가운데 장유유서가 들어있고, 소학(小學)에는 나이에 따른 인간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도 있다. 맹자도 시골에서는 나이를 따지게 마련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볼만도 하다. 그러나, 맹자가 그렇게 말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위한 인격과 학덕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나이를 따지는 관행의 뿌리가 유학사상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사실 나이를 따지는 관행은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 입사 시점이 빠르고 늦음에 따라 누구나 선배 또는 후배가 될 수 있다. 선후배의 서열이나 위계구조는 어떤 사회나 조직에서건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의 하나다. 이때 조직의 기능이 활성화되려면 구성원들의 인간관계가 조직의 목적이나 본질적 가치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반면에 나이와 같이 비본질적인 조건에 얽매이게 되면 인화(人和)가 깨지고 마침내 조직의 목표지향까지 흔들리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어떤 조직에서건 선배는 후배에게 권위를 가져야 한다. 대학에서는 선배가 나이나 학년과 같은 형식적 권위보다 학문적 성취나 노력과 같은 실질적 권위를 가질 때 선배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형식적인 권위로 실질적인 권위를 덧칠하거나 감추는 권위주의적인 선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선후배 관계를 도외시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세상에 대해 스스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먼저 착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세상에 나선 뒤에는 나이와 같이 비본질적인 형식적 권위에 매달리지 말고, 사회적 책임과 의무와 같은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실질적 권위를 위해서 노력하고 헌신해야 한다.
세상 일은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쩨쩨하게 나이만 따지지 말고, 세상을 걱정하거나 세상에 힘을 보태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기를 바라고 권한다. 좁은 시야를 벗어나 폭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품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세상을 염려하는 세상의 모든 동지들에게 늘 '스물에서 여든까지'를 동갑(同甲)으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에 한때 제법 유행했던 어떤 상품광고 문구의 뜻을 빌려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2080 세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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